항목 ID | GC044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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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俊柄殉忠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61-1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강욱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11월 4일 - 김준병 순충비 독천 작전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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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50년 - 김준병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51년 - 김준병 순충비 건립 |
현 소재지 | 김준병 순충비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61-13 학산면사무소 옆 |
성격 | 순충비 |
관련 인물 | 김준병 |
크기(높이,너비,두께) | 205㎝[비신 높이]|30㎝[기단 높이]|44㎝[비신 너비]|79㎝[기단 너비]|18㎝[비신 두께]|45㎝[기단 폭] |
관리자 | 학산면사무소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1950년 11월 4일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 지서에 보안 주임 경위 김준병 등의 주력 부대와 완도·진도에서 진주한 경찰 약 30명, 의경, 청년 단체 등 6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각 시군에서 집합된 북한군 100여 명이 지서를 습격할 목적으로 기습하여 왔다. 북한군과의 교전 끝에 적이 점령하고 있던 미암면 채지리 비리산 고지를 경찰 부대가 점령하였다. 이에 북한군도 독천 장쟁이산과 미암면 선황사 뒤 고지에 주둔하였다. 이때 김준병은 장쟁이산을 목표로 진격하다가 적탄에 의해 총상으로 전사하였다.
[건립 경위]
김준병 순충비(金俊柄 殉忠碑)는 6·25 전쟁 당시, 독천 작전에서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51년에 건립된 순충비이다.
[위치]
김준병 순충비는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61-13 학산면사무소 입구에 있다.
[형태]
김준병 순충비는 기단(基壇)과 비신(碑身)이 혼합된 형태이다. 규모는 비신의 경우 높이 205㎝, 너비 44㎝, 두께 18㎝이며, 기단의 경우 높이 30㎝, 너비 79㎝, 폭 45㎝이다. 비는 비신과 귀부(龜趺)의 석질이 다르게 보여 후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석문]
김준병 순충비의 앞면 중앙에는 ‘낭성 의사 김준병 순충비(朗城義士金俊柄殉忠碑)’로 기록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위국 진명 시위충 충의쌍전 금기재(爲國盡命是渭忠忠義雙全今幾在)’, 왼쪽에는 ‘사어 당사 위의 유공천 재사 추생(死扵當死謂義惟公千載死揂生)’이라고 쓰여 있다.
김중병 순충비의 뒷면에는 “애닲다 단기 4282 공비의 모진 난리 낭주의 고운터가 핏빛으로 물이 들고 산골짜기는 바람에 여윈 목숨 시들을제 김준병 아니더면 누구 있어 살았으랴. 잔악한 군사들이 읍을 뺐고 산을 치고 그 공 이미 컸기어든 여기까지 구할 줄이 어찌 한갓. 경찰로서 지키자던 소님이랴 동족의 피에 젖고 의에 맺힌 사내로다. 이사람 내시기는 하늘의 뜻이어니 하늘이 내셨거든 끝내 어찌 못살핀고 난민을 구해내고 잔적을 쫓던 길에 원수의 총 한 알이 그 목숨을 빼앗다니. 나인 비록 스물여덟 청춘에 컸을망정 넋이야 길이 남아 이 산천을 지키리라. 은덕산 골안개외 장정이 목멘 물은 우리 자손 만만대에 네 이름을 의리로다.”라고 적혀 있다.
[현황]
김준병 순충비의 근처에는 심후상 선정비, 관찰사 민영철 영세불망비가 함께 위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준병 순충비는 6·25 전쟁 당시 영암 지역을 수복하던 중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고, 나라 사랑하는 정신을 함양하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