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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유허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32
한자 愼在哲遺墟碑
이칭/별칭 영암 운암리 송암 신 선생 유허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선암 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문혜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03년연표보기 - 신재철 유허비, 신재철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신재철 유허비, 신재철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신재철 유허비 건립
현 소재지 신재철 유허비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선암 마을지도보기
성격 유허비
관련 인물 신재철
크기(높이,너비,두께) 156㎝[높이]|58㎝[너비]|30㎝[두께]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신재철의 유허비.

[개설]

송암(松菴) 신재철(愼在哲)[1803~1872]은 강원 감사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9세손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문하에 종유(從遊)하였고, 만년에는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熙)[1791~1867]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장헌주(張憲周)·기우만(奇宇萬) 등과 교류하였다. 또한 신재철은 향교 명륜당에서 18년 동안 한학을 하였으며, 설악재(說樂齋)라는 서당을 건립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신재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암군에서는 송암 정사(松菴精舍)를 지어 주었다. 신재철 유허비(愼在哲 遺墟碑)는 ‘영암 운암리 송암 신 선생 유허비’로도 불린다.

[건립 경위]

신재철 유허비는 유학자 신재철을 기리기 위해 1917년에 최돈석(崔敦錫)을 비롯한 향내 유림 14명이 세운 비석이다. 비문은 개항기의 유학자 기우만이 지었고,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아들이자 신재철의 사위인 최영조(崔永祚)가 글을 썼다.

[위치]

신재철 유허비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선암 마을의 선암 회관 맞은편에 있다.

[형태]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6㎝, 너비 58㎝, 두께 30㎝이다.

[금석문]

비석에는 ‘송암 신 선생 유허비(松菴愼先生遺墟碑)’라고 쓰여 있다.

[현황]

신재철 유허비는 비석의 마모가 심하지 않고 관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재철 유허비는 유학자 신재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자 신재철의 행적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참고문헌]
  • 목포 대학교 박물관, 『문화 유적 분포 지도』-전남 영암군(전라남도·영암군, 1999)
  • 유교넷(http://www.ugyo.net)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http://encykorea.aks.ac.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8.19 몰년 수정 1873 -> 1872
이용자 의견
박** 신재철의 몰년을 1873년에서 1872년으로 수정할 것을 요청함. 勉菴先生文集 卷31의 <松菴愼公墓表>에 따르면 "純祖癸亥生。今上壬申卒。七十年。"이라고 되어 있음. 아울러 동 자료에는 송내희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것은 노년이고, 원래 기정진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음. 따라서 기정진의 문인으로 기록하여야 함. http://db.itkc.or.kr/dir/
  • 답변
  • 디지털영암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의견과 해당 자료를 검토하여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의견 개진에 감사드립니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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