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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34
한자 潘南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반남현이 반남군으로 승격
폐지 시기/일시 1018년연표보기 - 반남현 폐현

[정의]

고려 전기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과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개설]

반남현(潘南縣)은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반남군으로 승격되어 영암 지역의 야로(野老)[영암군 금정면]와 곤미(昆湄)[영암군 미암면]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려 초에 들어와 반남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18년(현종 9) 나주에 병합되어 폐현되었다. 반남은 고려 삼별초(三別抄)의 난 때 여몽 연합군의 김방경 장군 등이 전진 기지로 이용하였다.

[관련 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 나주목 고읍 조를 보면, “반남은 남쪽 40리에 있다.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이었는데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반나로 고치고 대방주에 딸린 현으로 하였다. 신라 경덕왕 16년에 반남군으로 고치고 야로와 곤미 두 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고려 초에 반남현으로 강등되었다가 현종 9년에 나주에 병합되었다[潘南南四十里夲百濟半奈夫里唐滅百濟改半那爲帶方州領縣新羅景德王十六年改潘南郡領縣二野老昆湄高麗初降縣顯宗九年來屬].”라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반남현 치소의 서쪽의 경우 지금은 육지화되었으나 반남현 당시에는 바다로 배가 정박하던 해상 포구였다. 1273년(원종 14)에 김방경이 제주도의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하여 군사들을 훈련하여 수군 만여 명을 거느리고 흔도, 홍다구와 더불어 반남현 포구에 주둔하였다. 제주로 떠나려 하였으나 각 도(道)에서 온 전선들이 모두 바람에 까불리므로 전라도에서 온 160척만을 가지고 떠났던 곳이 바로 반남현의 포구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미산의 서쪽 언덕에는 군대가 주둔하였다는 ‘둔전(屯田)등’이 있다.

[변천]

반남현은 고려 1018년(현종 9)에 나주에 병합되어 조선 말기까지는 나주목의 직속인 반남면, 종남면 등으로 존속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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