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6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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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靑鶴山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연수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36년 - 이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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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84년 - 이이 사망 |
배경 지역 | 명주 청학동 소금강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
성격 | 기행문 |
작가 | 이이 |
[정의]
조선 전기 문인 율곡 이이가 강릉 청학동 소금강의 절경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개설]
이이(李珥)[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출생했으며,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16세에 어머니를 잃고 3년 시묘 생활을 했으며, 이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다. 1564년 식년 문과 장원 급제까지 9번에 걸쳐 장원을 했다고 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도 있다. 호조 좌랑, 판돈녕부사, 이조 판서 등을 지냈다.
[구성]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는 이이가 벼슬을 그만두고 강릉에 외할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청학산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유람한 기록이다. 동행으로 서외숙(庶外叔), 동생 이우(李瑀)[1542~1609], 박유, 장여필 등이 있다.
[내용]
「유청학산기」는 이이가 청학산을 유람하게 된 배경, 청학산의 지명에 대한 소개,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청학산의 아름다움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이가 벼슬을 그만둔 1569년(선조 2)에 강릉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경치 좋은 천석(泉石)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이는 박유에게서 “깊숙한 곳에는 청학이 바위 봉우리 위에 깃들이고 있어 참으로 선경이지만, 숨겨진 채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기행에 나섰다.
「유청학산기」에는 " 관음천(觀音遷)이라고 하는 조도(鳥道)가 있고 그 서쪽에 석문(石門)이 있으며, 석문 안에 식당암(食堂巖)이 있고 식당암 서쪽엔 산성(山城)이 있는데, 성가퀴가 지금도 완연합니다."라는 대목에서처럼 명승지의 세부적 지명이 상세하게 등장한다. 또한, "서쪽에 있는 봉우리 하나를 우러러보니, 가장 높고 모양이 특이하여 ‘촉운봉(矗雲峰)’이라고 이름 붙이고, 예전에 ‘식당(食堂)’이라고 부르던 이 바위를 ‘비선(祕仙)’이라고 이름을 고쳤으며, 이 일대 골짜기를 ‘천유(天遊)’라고 이름 붙이고, 바위 아래 있는 못을 ‘경담(鏡潭)’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산 전체를 ‘청학(靑鶴)’이라고 이름 지었다."라는 대목에서처럼 지명을 새롭게 만들고 있어서 「유청학산기」는 강릉청학산[현 소금강]의 지명 유래를 보여 주는 기행문이다.
「유청학산기」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 태자(麻衣太子)가 군사들을 이끌고 강릉청학산에 와서 성을 쌓고 대항한 유래를 지닌 ‘산성(山城)’도 등장한다. 「유청학산기」의 청학이란 '산봉우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소금강 계곡 전체'[摠名其山曰靑鶴]를 의미하는 것이다.
[특징]
‘청학동 청학산 소금강’의 지명 유래에 있어서 ‘청학산’이라는 지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이이의 「유청학산기」를 꼽을 수 있다. 청학산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금강산을 축소한 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소금강'이라고 부르고 있다. 청학동 소금강 지역이 1975년에 오대산 국립 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지금의 명칭인 ‘오대산 소금강’으로 불리고 있다. 청학산[지금의 소금강]의 아름다운 명승을 최초로 알린 글은 이이의 「유청학산기」를 통해서이다. 식당암, 구룡폭포, 금강산성(金剛山城) 등의 지명이 모두 이이의 「유청학산기」에 등장한다.
노재현·김현의 논문 「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에 대한 지명 재고」에서도 등장하거니와 2008년 이후 소금강의 옛 이름인 ‘청학산’을 되찾자는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오대산보다 5년 앞선 1970년 11월 23일, 국내 최초로 명승 지정이 이뤄졌다. 우리나라 명승 제1호의 상징성[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거 지정번호 폐지에 따라 명승으로 재지정]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청학동의 의미를 두고 노재현·김현은 “지리산 청학동을 비롯하여 강릉청학동, 남산 청학동, 주왕산 청학동, 경기도 적성현[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수정봉 청학동 그리고 보령 청학동 등 사실적 공간으로서의 청학동에 대한 인식은 고려조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에 전하는 「청학동기」를 필두로 피세지(避世地)라는 사실적 공간으로서의 인식과 무릉도원과 동일한 관념적 공간이라는 이중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의와 평가]
오대산국립공원 소금강 탐방로 중에서 소금강 제2주차장~구룡폭포 구간을 ‘1569 율곡 유산길’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이가 1569년 청학산을 탐방하고 남긴 「유청학산기」의 유산을 잇는 것이다. 지역의 일부 자료[관광 안내서와 백과사전 등]에 소금강이란 명칭이 이이의 「유청학산기」에서 유래한다는 글도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이의 「유청학산기」에는 ‘소금강’이란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이가 칭한 ‘청학산’은 청학천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현재의 지명인 소금강 계곡 주변의 전체 지역 총칭이다. 이이의 「유청학산기」는 오늘날 연곡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청학산에 대한 지명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청학산[오늘의 소금강]'의 명승을 최초로 알린 기행문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