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262
한자 新聞
영어음역 sinmun
영어의미역 newspaper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집필자 이도남

[정의]

특정 또는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시사에 관한 뉴스를 비롯한 정보·지식·오락·광고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

[개설]

통상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를 가리킨다. 발행형태에 따라 일간지·격일간지·주간지·순간지(旬刊紙)·월간지로 구분된다. 현재 강릉을 포함한 강원도 지역에서 발행되었거나 발행되고 있는 신문 중에 격일간지로는 『동방신문』이 있고, 일간지로는 『강릉일보』·『강원일보』가 있고, 주간지로는 『강원도민일보』·『강릉신문』·『동녘신문』·『강원동도신문』·『영동신문』·『임영신문』이 있다. 이외에 대학신문으로 관동대학교 교내신문인 『관대신문』, 강릉원주대학교 교내신문인 『강릉대신문』 등이 있다.

[격일간지]

강릉 지역에서 발행된 신문으로 유일한 격일간지는 『동방신문』이다. 『동방신문』은 1945년 9월 7일 미군정 당국의 신문발행허가 제1호로 강릉에서 창간되었다. 『동방신문』의 보급 지역은 삼척 일대와 정선, 평창 지역 일부였고, 1946년 1월 강릉인쇄소 대표 최찬윤의 협조로 활판 인쇄로 발행하였다.

『동방신문』의 논조는 민족주의 진영의 우익 경향을 띠었고, 행정 당국의 발표문을 위주로 제작하여 주민 계도적인 입장에 있었다. 5여 년 동안 간행되다가 한국전쟁으로 폐간되었다.

[일간지]

1. 『강릉일보』

1950년대 발행하였던 일간지로, 강릉·삼척 등지를 보급 영역으로 하였다. 『강릉일보』는 570호까지 발행하다가 재정난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 발행이 중단되어 있던 중에, 속초·고성·양양 등 수복 지구를 보급 영역으로 태동된 『동해일보』가 1955년 3월 공보처의 발행 허가를 받지 못해 자진 폐간된 일이 있었다. 이때 『동해일보』 경영진은 판권만 갖기로 하고 휴간 중인 『강릉일보』를 인수하여 1955년 7월 15일부터 속간하였다. 그러나 운영난으로 2년을 겨우 넘긴 채 1957년 7월 19일 자진 폐간하기에 이르렀다.

2. 『강원일보』

강원도 춘천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간지이다. 남궁태를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하여 1945년 10월 24일에 8절 양면 등사판 『팽오통신(彭吳通信)』으로 출발하였다. 제27호부터 『강원일보』로 개칭하고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하였다.

민족정화운동, 향토문화 창달, 민주독립국가 건설에 중점을 둔 편집방침을 갖고 동인제(同人制)로 운영하다가 1947년 주식회사로 바꾸었다. 6·25전쟁으로 휴간되었다가 1952년 원주에서 타블로이드판으로 복간되었고, 1954년 춘천으로 복귀하여 같은 해 대판으로 지면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원일보』가 개최하는 주요 행사로는 신춘문예, 3·1절단축마라톤대회, 강원보훈대상, 강원농민대상, 전국사진공모전 등이 있다.

3. 『강원도민일보』

『강원도민일보』는 지방자치시대의 참 언론을 지향하며 1992년 11월 26일 춘천에 본사를 두고 창간되었다. 언론 파동으로 강원일보사를 떠난 임원진, 부장, 기자 제작사원들이 중심이 돼 창간되었다. 『강원도민일보』는 조간 20면으로 창간호를 내었고, 이는 강원도에서 발간된 최초의 조간신문이기도 하였다.

『강원도민일보』는 도내 전 지역에 판매망을 갖추고 지방 기사를 중점적으로 편집하여 특성 있는 제작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다양한 행사, 계도 활동을 벌여 지역 내의 유력 일간지로 활약하고 있다.

[주간신문]

1. 『강릉신문』

1987년 6.29선언이 있은 후 언론 자유화 정책에 실시되자 강릉 지역에서도 지역 신문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이에 1989년 7월부터 『강릉신문』 창간 작업을 준비하였고, 1989년 10월 4일 등록번호 다-1030호로 특수주간신문으로 등록증을 발급받았다.

1990년 1월 8일 『강릉신문』은 ‘바른 말 곧은 글 참다운 신문’이라는 취지를 내걸고 12면의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1990년 4월 1일 신문 제호를 『관동신문』으로 변경하여 문공부에 변경 등록을 하였다가, 4년 후인 1994년 4월 1일 『강릉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동녁신문』

1989년 초 강릉 지역의 정치문화 창달을 위하여 비등록단체인 영동정치문화연구소[소장 함영회]는 우선 비등록으로 소식지를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1989년 4월 20일 『강릉의 소리』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강릉의 소리』는 등록이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취재 상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강릉의 소리』는 제4호까지 발행되고 자진 폐간하게 되었다.

『강릉의 소리』가 자진 폐간된 후, 기존의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역 신문을 만들기 위해 재창간된 신문이 『동녁신문』이다.

『동녁신문』은 1990년 1월 31일에 공보처에 등록 신청을 하였으며, 1990년 5월 16일 공보처 등록번호 다-1268호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발행·편집인은 전순표였다. 1990년 6월 23일 ‘새벽을 여는 동녘사람’이란 취지로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그러나 『동녁신문』은 1993년 7월 21일 제139호가 발행된 후 현재까지 휴간 상태에 있다.

3. 『강원동도신문』

『강원동도신문』은 1993년 9월 27일 등록번호 다-3216호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강원동도신문』은 1993년 12월 4일 총 16면의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창간 당시 사장은 박치호, 발행·편집인은 박경희, 인쇄인은 김상영이었고, 사옥은 강릉시 포남동 1161-5번지에 두었다.

『강원동도신문』은 강릉시는 물론 인접 지역 시군정을 해설 보도하고 각급 기관, 사회단체, 기업체의 자료를 홍보하며, 각종 생활정보를 수록하여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지방 소식을 신속히 전달하였으나 폐간되었다.

4. 『영동신문』

『영동신문』은 1994년 6월 2일 공보처 등록번호 다-3689호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발행인은 윤재완이고, 판형은 대판으로 보급 지역은 영동 일대로 하였다. 『영동신문』의 설립 목적은, 첫째 지방화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언론 매체로서 사명과 책임감을 갖고 주민의사 결집에 구심 역할을 다하고, 둘째 환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지역의 잠재력을 최대로 개발하며, 셋째 지방향토문화의 창달과 중심산업체 육성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것에에 두었으나 폐간되었다.

5. 『임영신문』

『임영신문』은 1994년 8월 5일 공보처 등록번호 다-3817호로 등록 인가를 받았다. 『임영신문』은 영동참사랑 실천사업단 산하의 사업체 가운데의 하나이다. 영동참사랑 실천사업단은 그 산하에 임영신문사를 비롯하여 영실단유학정보센타, 영실단통역번역센타, 유통사업부, 이벤트사업부 등을 두었다. 『임영신문』의 사시는 영동인의 하나됨에 있었으나 1997년 2월 25일자로 폐간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3.29 [주간신문] 내용 수정 <변경 후> 『강원도동신문』~ 지방 소식을 신속히 전달하였으나 폐간되었다. 『영동신문』의 설립 목적은, ~ 두었으나 폐간되었다. 『임영신문』은 ~ 에 있었으나 1997년 2월 25일자로 폐간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