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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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拓隊- |
영어음역 | Gaecheokdae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기설 |
[정의]
강릉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새로 개척하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마을.
[형성]
개척대 마을은 평야 지대나 구릉 지대를 개척하여 생긴 마을이다. 개척대 마을은 3단계로 구분되는데 먼저 일제강점기 초기의 개척대 촌락, 해방 이후의 개척촌락,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개척대 촌락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와 학산리에 있는데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과 관련하여 일제 세력에 편승한 동양 척식 회사를 비롯한 일본 식민 회사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관유지를 불하받은 일본 이민자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다음은 해방 이후의 개척대 마을이 있는데 해방과 한국 전쟁을 거치며 동막저수지와 칠성저수지가 완공되기 전까지 임야 개척이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1948년 정부의 후원 아래 발족된 한국 개척대가 국유림에 투입되었는데 한국 개척대는 해방 후 월남한 북한 출신으로 구성되었고, 그 후 피난민, 경상북도, 강원도, 충청북도 등지에서 소작농 임금 노동자, 영세 자작농민들이 유입되어 생활하면서 마을이 개척되고, 가옥 형태도 원주민의 가옥, 개척대 가옥, 유입민의 가옥 등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1960년 이후의 개척대 마을인데 이때는 칠성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가 완공됨으로써 지역의 토지 이용 및 촌락 발달의 양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변천]
칠성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는 강릉 수리 조합의 주관 아래 1952년부터 1961년까지 10개 년 사업으로 축조되었다. 칠성저수지와 동막 저수지의 완공으로 개척대 마을이 몽리구역으로 책정되어 도수로에 의한 관개용수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종래의 반전(反田) 현상으로 인구 부양력의 증가와 저렴한 땅값, 신문, 라디오의 보도, 동향인의 유대 관계 등에 의해 개척대 마을로 이끌려 온 유입인들로 인하여 인구의 이입 현상이 촉진되었다.
[위치와 교통]
강릉 지역에 새로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어단리·금광리 지역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