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D0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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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영의 |
풍도로 가는 공식적인 길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1번,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다. 풍도가 그동안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에 속해 있으면서도 ‘육지 사람 손을 별로 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풍도는 다른 서해의 섬이나 동해와 남해처럼 그 흔한 해수욕장 하나 없는 곳이지만, 봄이면 야생화와 달래, 두릅 같은 봄나물들이 나고, 초여름에는 더덕이며 둥굴레 등의 약초들이 돋아난다.
풍도에 야생화가 많고 산나물이 풍성하게 나는 것은 천혜의 지형 때문이다. 섬은 남북으로 두 개의 작은 산봉우리가 둥글게 마을을 감싸 안은 형국이다. 능선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곳에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적어 적당한 습기도 머금게 된다. 그 안에서 갖가지 야생화며 산나물이 자라는 것이다.
풍도의 야생화는 선착장이 있는 마을 뒤편 야산의 500년 된 은행나무 인근에서 시작한다. 나무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면 무더기로 피어 있는 노란 복수초가 눈길을 잡는다. 풍도 사람들은 복수초를 ‘유정꽃’으로 부른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복수초도, 노루귀도, 변산바람꽃도 모두 ‘유정꽃’이었다. 풍도에는 그 유정꽃이 지천으로 꽃밭을 이루고 있다. 풍도의 대표적 야생화는 풍도대극, 갈기복수초, 꼬리현호색, 녹노루귀, 변산바람꽃 등인데, 이 가운데 풍도대극은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다.
풍도대극은 풍도에만 있어 ‘풍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육지의 붉은대극과 흡사하지만 유전적으로는 매우 이질적인 대립인자를 갖고 있다. 푸른색의 새순, 털이 달린 씨방이 특색이다. 붉은색 새순, 털이 없는 씨방의 것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어 붉은대극에서 완전히 분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풍도대극은 봄이면 거의 섬 전체를 뒤덮는다. 섬을 대표하는 식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또한 풍도는 ‘복수초밭’ 천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꽃잎 끝이 사자갈기처럼 갈라져 있다. 이 종류는 이영노 박사의 도감에만 등장하며 아직 국가표준식물 목록에는 오르지 않은 종이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복수초와 갈기복수초의 중간 격인, 즉 꽃잎이 갈라질까 말까 한 것들도 보인다. 역시 아직 확실한 종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이곳의 현호색은 유난히 잎과 줄기가 크다. 그래도 육지의 것과 얼마나 다를까 싶어 지나치기 쉽지만 꽃잎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이곳 현호색의 바깥쪽 꽃잎 가장자리엔 일반 현호색과 달리 자잘한 톱니가 있고, 끝부분의 V자로 파진 가운데에 꼬리 같은 게 비쭉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육지의 현호색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아랫입술꽃잎뿐 아니라 윗입술꽃잎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풍도에는 노루귀도 지천이다. 이 중 잎에 선명한 무늬가 들어간 종류가 있는데 새끼노루귀와의 중간종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다. 노루귀는 대개 꽃받침잎의 밑부분에 달린 포가 자갈색을 띤다. 그런데 흰색으로 피는 것 중에서 포가 자갈색이 아니라 녹색인 것도 있다. 아주 적은 수지만 일반적인 노루귀와는 분명히 대조적이고 또 예쁜 모습이다.
변산바람꽃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최근에 자생지가 많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곳 풍도만한 규모로 군락을 이룬 곳은 드물다. 워낙 개체가 많다 보니 머리가 둘 달린 것도 보이고, 꽃받침이 특이한 꽃들도 곧잘 눈에 띈다. 또 꿩의바람꽃과 중의무릇, 복수초, 노루귀 등이 한데 어울려 무더기로 피어 있기도 한다. 여기서 처음 변산바람꽃 군락지를 만나보면 ‘꽃멀미’라는 말을 실감할 것이다.
야생화는 허리를 둥글게 굽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더 아름답고 또 감동적이다. 보라색 노루귀의 솜털 가득한 꽃대가 하늘거리는 모습은 마음까지 간질인다. 변산바람꽃의 노랗고 하얀 꽃술의 모습은 그 선명함으로 아찔하다. 길쭉한 타원형의 꽃잎을 가진 꿩의바람꽃이 살짝 꽃잎을 오므린 모습은 수줍은 색시 같다. 봄 야생화가 이렇듯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난 가을의 마른 낙엽들이 덮인 메마르고 황량한 땅에서 연초록빛으로 움을 트기 때문이다.
풍도에 피어 있는 야생화 중 가장 많은 것이 복수초이다. 마을 주민들이 당산이라고 부르는 뒷산 어귀 숲속 곳곳에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 있다. 변산바람꽃도 한쪽 비탈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귀족적인 풍모의 노루귀는 지금 한창 꽃대를 올리고 있다. 중의무릇은 꽃이 작아서 잘 눈에 띄진 않지만, 산길의 길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제 막 꽃잎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진초록의 대극도 바다를 내려다보며 겹겹이 접은 꽃잎을 펴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3월이면 야생화를 보러 오는 야생화 사진촬영 동호인이 많다.
풍도 사람들은 해마다 겨울이면 1년치 생활비를 대주던 풍도 인근의 도리도 어장이 화성시에 편입된 아픔을 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개발의 무서운 회오리가 불어와 천혜의 해안선과 고운 파도 소리와 조약돌을 잃어버린 섬이 될까 두려워한다. 바다에서 일출이 시작되는 서해안의 외로운 섬, 안산시보다 당진군이 더 가까운 섬. 대한민국 해양생태 관광의 보고인 풍도는 잊혀진 섬이 아닌, 한국생태 자원의 마지막 보루이자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남고 싶어 한다.
이런 풍도 주민들의 바람에 따라 경기도에서는 2005년 5월 1일 3년간 풍도·도리도 해역을 보호수면으로 지정[2008년 4월 30일까지]하였으며, 2007년 6월 풍도 공공시설용지[면적 5,000㎡] 공유수면 매립공고와 2008년 10월 22일 인공어초시설, 국화도와 풍도 인근 해역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