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D01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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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영의 |
풍도는 1432년(세종 14) 충청도 덕산현(德山縣)에 소속되었다가 1486년(성종17) 수원부로 이속되었다.
1775년(영조 51) 수원부 마정면(馬井面) 풍도리(楓島里)로 편입되었다가 1872년 수원부 장안면(長安面) 풍도리(楓島里)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에는 웅진군에 편입되었으며, 1994년 2단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안산시에 편입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보유편에 따르면, “풍도는 수원부의 서쪽 45리에 위치해 있고, 둘레가 20리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484년(성종 17) 남양부에 소속되어 목마장을 두었으나 이후 폐지한 것으로 보인다.
목마장과 관련한 기록은 다음의 내용으로도 알 수 있다. 즉 1432년(세종 14) 경기점마별감(京畿點馬別監) 대호군 조혜(趙惠)가, “인천(仁川)에 사는 학생 하일(河逸)이란 사람이 이르기를, 예전에 어떤 뱃사람이 ‘충청도 덕산현에 풍도(楓島)라는 섬이 있는데, 섬 가운데는 작은 못[池]이 있고 흑·백(黑白) 두 말[馬]이 늘 못가에 나타나더니, 사람이 혹시 엿보게 되면 홀연히 모습이 없어지고 자취만 보일 뿐이라고 하면서, 근년에 와서 그 못은 메워지고 말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것은 곧 풍도가 목마장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477년(성종 8) 경기관찰사의 계본에 따라 병조에서 영종포(永宗浦)에 소속되어 있는 소홀도(召忽島)·이작도(伊作島)·독갑도(禿甲島)·사야곶이도[士也串島]·풍도(楓島)·승황도(昇荒島) 등 6개의 목장 가운데 소홀도·이작도를 초지량에 분속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까지도 풍도가 목마장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목마장으로 주목된 풍도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 후기의 고문서 등 여러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행정구역 변동이 자주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자주 행정 관할이 바뀌는 것은 풍도가 지닌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현재 안산시 단원구의 대부도에 딸린 섬들이 행정 편의에 따라 자주 행정 관할이 변동되듯 풍도 역시 비슷한 연유로 행정 관할이 자주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경기만 일대의 섬들이 1994년 인천광역시 승격으로 경기도와 분리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인천시에 소속되었으나, 대부도의 경우 경기도 소유의 땅이 많아서 인천으로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