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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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珠橋里-由來-獨善堂 |
영어의미역 | The History of Jugyori and Dokseond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
집필자 | 이현우 |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주교리·독선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주교리의 유래와 독선당」은 주교리의 지명유래담이자 독선당 현판의 유래담이다. 독선당 최혼(崔渾)은 통덕랑으로 학문과 덕행, 특히 예법에 명성이 높았다. 연산군 때 사화를 피해 감자골로 입향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독선당에서 자적자수(自適自修)한 인물이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11월 4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최현목[남, 60]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내고장 안산』에 실려 있다.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다시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내용]
주교리는 야산이면서 산골이었고 교통이 아주 불편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양주최씨(楊州崔氏)가 들어와 살았고, 지금도 종중산을 약 3분의 2 정도 가지고 있으며, 옛날에는 도로조 수입이 약 2백 석 정도나 되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구슬 ‘주(珠)’자 다리 ‘교(橋)’자 해서 주교(珠橋)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주교리(珠橋里)라고 했다고 한다.
또는 여기가 해안이니까 옛날 바닷가에 뱃줄을 매는 닻줄을 놓고 다녔다고 해서 ‘주대다리’라고도 했다. 현재의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숙사 앞까지 배가 들어 왔었는데, 매우 깊어 사기를 실은 배가 수렁에 빠졌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양주최씨 집안에 훌륭한 학자 최혼이 있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임금의 명으로 암행어사 박문수가 그를 부르러 왔으나 벼슬을 사양하므로 독선당(獨善堂)이라고 하는 현판을 써 주고 갔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주교리의 유래와 독선당」의 주요 모티프는 ‘주교(珠橋)가 있는 마을’, ‘벼슬을 사양한 최혼’ 등이다. 이 설화는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는 주교리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지명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