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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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崇祜 |
영어음역 | Yi Sungho |
이칭/별칭 | 덕이(德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덕이(德而). 할아버지는 한성부판관 이의규(李宜揆), 아버지는 호조좌랑 이보순(李普淳), 어머니는 김성유(金聖游)의 딸이다. 덕산현감 이보흥(李普興)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이숭호는 1753년(영조 28) 진사시에 합격하고, 1761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듬해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이후 정언, 낭청, 헌납, 지평 등을 지냈으며, 성리학에 뛰어나 10여 년 동안 경연(經筵)에 출입함으로써 특별히 가자(加資)되기도 하였다. 1780년(정조 4) 동지부사로 이듬해에는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84년 청나라에 보내는 문서를 편집하여 인쇄하라는 왕명을 받고 승문원과 사역원의 옛날 문적을 가져다가 교열을 하던 중 집에 불이 나 조서(詔書), 칙서(勅書), 표문(表文), 주본(奏本), 계본(啓本), 자문(咨文) 13편과 사역원의 모든 문서들이 소실되었다. 이후 대사헌, 대사간, 호조참판, 형조판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임무 수행 중 관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 옻나무골에 있다가 신도시 건설로 용인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