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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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商輅 |
영어음역 | Yi Sangro |
이칭/별칭 | 태소(太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태소(太素). 아버지는 수찬·교리를 지낸 이의중(李毅中)이다. 아들이 이복일(李復一)이다.
[활동사항]
이상로는 1744년(영조 20) 진사가 된 후 사복시첨정을 거쳤으며,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금의 특명으로 지평에 올랐고 또 영조가 아버지 이의중을 추억하고 사간·부수찬·첨지·승지로 승진시켜 특별히 제수했다. 정조가 즉위한 후 즉위를 반대하던 홍인한(洪麟漢), 정후겸(鄭厚謙), 윤양후(尹養厚), 민항렬(閔恒烈), 홍지해(洪趾海), 홍상간(洪相簡) 등 노론 벽파가 제거되었는데, 이때 홍지해에게 보낸 서찰에 쓴 ‘기관(機關)이 음비(陰秘)하고 경상(景像)이 위박(危迫)하다’는 구절이 문제가 되어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각골에 있었는데 신도시 개발로 1984년에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북양리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814(순조 14) 아들 이복일이 청원함으로써 역적의 죄명을 씻게 되었고, 1830년 관작(官爵)이 복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