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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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光湜 |
영어음역 | Lee Kwangsik |
이칭/별칭 | 원백(源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원백(源伯). 증조할아버지는 이창환(李昌煥)이고, 할아버지는 이경(李坰)이다. 아버지는 좌랑 이태석(李泰錫)이며, 어머니는 생원 윤해수(尹海壽)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광식(李光湜)[1690~1754]은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중앙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1726년(영조 2) 온양군수로 재직할 때 민가를 헐어 친구가 장지(葬地)를 만드는 데 도와준 죄로 파직되었다. 1733년(영조 9)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사간원정언으로 일할 때 이조판서 김취로(金取魯)를 논핵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사간원헌납과 사헌부장령을 번갈아가며 맡다가, 1743년(영조 19) 사헌부집의에 제수되었고, 이듬해부터 사간원사간과 사헌부집의를 여러 차례 번갈아 하였다.
1745년(영조 21) 사헌부집의로 재직하면서 익산군수 김필우(金必祐)와 강령현감 조봉인(趙鳳仁), 전라감사 정형복(鄭亨復) 등이 백성을 잘못 다스렸다 하여 탄핵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역적의 마음을 품은 이덕제(李德濟)와 망측한 말을 한 윤광주(尹光周)를 탄핵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는 죄로 다른 대관들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간원사간으로 복귀하였다. 이후에도 주로 사간원사간과 사헌부집의 등 간관 직책을 번갈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