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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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慄 |
영어음역 | Shin Yul |
이칭/별칭 | 경백(敬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백(敬伯). 할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신점(申點)이고, 아버지는 문화부사를 역임한 신순일(申純一)이다. 어머니는 이광현(李匡顯)의 딸이며, 부인은 신경진(辛慶晋)의 딸과 연릉부원군 이호민(李好閔)의 딸이다.
[활동사항]
신율(申慄)[1572~1614]은 조선시대 안산군 마유면 죽률리[현 경기도 시흥시 죽률동]에서 태어났다. 1595년(선조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이어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실록의 중간(重刊)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병조정랑·경기도사·성균관직강·사간원헌납·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봉산군수를 지내던 중 1612년(광해군 4) 병조의 문서를 위조하여 사용하던 김경립(金景立)을 체포하고 김직재(金直哉)의 반역을 고변(告變)한 공으로 예조참판에 오르고 상훈을 받았으나, 뒤에 삭탈관직되었다.
[상훈과 추모]
1612년의 무옥으로 형난공신(亨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영풍군(永豊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