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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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時永 |
영어음역 | Gang Siyeong |
이칭/별칭 | 여량(汝亮 또는 汝良),문헌공(文憲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량(汝亮, 汝良). 진창군(晉昌君) 강인(姜絪)의 8세손으로 증조부는 강필득(姜必得), 할아버지는 강세정(姜世靖), 아버지는 강준흠(姜浚欽), 어머니는 권빈(權儐)의 딸이다.
[활동사항]
강시영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809년(순조 9) 진사가 되고, 1820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수찬을 지냈다. 1829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정사(正使) 이광문(李光文), 부사(副使) 한기유(韓耆裕)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8년(헌종 4) 부수찬을 거쳐 1843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846년에는 행호군(行護軍), 1848년에는 한성부판윤, 형조판서가 되고 그해 동지사(冬至使)의 정사(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53년(철종 4)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정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온 이후 오랫동안 대사헌을 지내고 1859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고종이 즉위한 뒤 홍문관제학, 의정부우참찬,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강시영은 글씨에 뛰어났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