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전해 오는 샘 이름에 얽힌 이야기. 「양달사 장군과 장독골샘」은 조선 시대 무신인 양달사(梁達泗)[1519~1555]가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울 때 물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군령기를 꽂은 장소에서 물이 솟아 대승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양달사는 1519년(중종 14) 영암군 도...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양달사(梁達泗)[1518~1555]는 시묘살이 중에 을묘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도원(道源), 호는 남암(南岩)이다. 감역(監役) 양흥효(梁興孝)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주부(主簿) 양승조(梁承祖)이다. 문인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 아버지의 팔촌 형제이다. 양달사는 1537년(...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을묘왜란 때 의병장 양달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양달사(梁達泗)[1518~1555]의 자는 도원(道源)이고 호는 남암(南岩)이며,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감역(監役) 양흥효(梁興孝)의 증손이며, 주부(主簿) 양승조(梁承祖)의 아들이다. 삼종숙(三從叔)인 양팽손(梁彭孫)의 문인이다. 제주 주부(濟州主簿)를 지낸 양승조와 청주 한씨...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암의 연안 및 내륙에 출몰하였던 일본 해적. 왜구는 13세기 “왜구금주(倭寇金州)”라는 구절과 함께 역사 속에 등장하였다. 고려로 침입한 왜구는 미곡을 실은 조운선 약탈과 인명 살상 등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섬,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연해 및 육지로 이주하여 섬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을 정도였다. 영암도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순천부에 왜구...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장독걸샘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1555년(명종 10) 5월에 남해 현감으로 재임하던 양달사(梁達泗)[1518~1555]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관직을 버리고 시묘를 위해 고향 영암에 돌아왔다. 이 무렵 왜구들이 1552년과 1553년 두 해에 걸쳐 제주를 노략질하고 1555년 5월에는 60여 척의 병선을 이끌고 달량진[현 해남군 달량포...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