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독립운동(義兵 獨立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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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정식(高貞植)[1898~1923]은 1920년 전주군 고산면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강도죄로 복역 중에 옥사했다. 고정식의 본관은 제주(濟州)로 완주군 고산면(高山面) 읍내리(邑內里) 출신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고경태(高景泰), 증조할아버지는 고세규(高世逵), 할아버지는 고진민(高鎭敏), 아버지는 고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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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국영환(鞠榮煥)[1871~1939]은 동학농민운동과 을미의병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국영환의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영화(永化), 호는 곤암(坤庵)이다. 국영환은 13세에 서울로 올라가 어영대장(御營大將) 조영하(趙寧夏)에게 병서(兵書)를 배우고 연산(連山)의 김항(金恒)에게 『정역(正易)』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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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국하현(鞠夏鉉)[1868~1919]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성모(聖模)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다. 국하현은 1919년 3월 11일 고산(高山)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3·1운동은 전라북도 14군 전역에서 일어났는데, 전주 읍내의 만세 시위가 완주군내로 퍼져 장기적인 운동으로 이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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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판봉(金判奉)[1901~?]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조직된 황극교의 일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김판봉은 1936년 2월 무렵 전라북도 익산에서 정해도(鄭海桃)를 교주로 하는 황극교(黃極敎)에 가입하였다. 황극교는 김영식이 1926년 음력 10월 김제군 부량면 신두리 자신의 거주지에서 정읍시 영원면 출신의 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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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진(金亨鎭)[1861~1898]은 완주군 출신으로 백범 김구와 함께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김형진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원용이다. 김형진은 1895년 5월 황해도 해주에서 김구(金九)를 만나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김구는 1893년 1월 무렵 동학에 입교하여 ‘아기접주’라는 별명을 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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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쾌철(宋快喆)[1923~1999]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설치한 경위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을 했다. 송쾌철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軍事組織法)에 따라 중화민국총통(中華民國總統) 장개석의 특별한 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광복군을 조직하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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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명석(柳命錫)[?~1930]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명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삼여(三汝)이다. 유명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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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연봉(柳淵奉)[1879~1926]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연봉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호(春浩), 이명(異名)은 춘삼(春三)이다. 유연봉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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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연청(柳淵淸)[1869~1928]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연청의 본관은 고흥(高興), 이명(異名)은 춘호(春浩) 또는 춘일(春一)이다. 유연청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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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연풍(柳淵豊)[1875~1936]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연풍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오(春五)이다. 유연풍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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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영석(柳瑛錫)[1873~1952]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영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명오(明五)이다. 유영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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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준석(柳俊石)[1885~1971]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준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공범(公範)이다. 유준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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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장. 유지명(柳志明)[1881~1909]은 1907년 스스로 의병대장이라 칭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확보해서 의병대를 조직했다. 1907년 9월 22일 전라북도 용담군 건무리에서의 전투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전과를 올렸으나 1909년 일본군 헌병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국했다. 유지명은 1907년 9월 초순경부터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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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치복(柳致福)[1866~1910]은 1907년 한 마을 사람 11명과 같이 항일구국투쟁을 맹서하고 삼남의진 의병대장 유지명 의진에 들어갔다. 유지명 의진에서 동지 3명과 함께 10월 10일 우북면 장암 이화순의 집에서 군자금 30원을 조달했다. 이어서 송태식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미력면 도내리의 최순표의 집에서 군자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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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 유현석(柳炫錫)[1888~1960]은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본이 노골적으로 식민지화를 추진하자 1906년 10월 유씨 집안 9명과 거의(擧義)하고 군자금 모금에 주력했다. 의병 해산 후에는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했는데 1916년 일본 경찰에게 의병 활동이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유현석은 12년형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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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으로 활동한 의병. 이유종(李宥鍾)[1886~1918]은 1906년 완주군 비봉면의 고흥유씨(高興柳氏) 집안 청년들과 항일 구국 투쟁을 함께 하기로 결의하고 의병진에 들어가서 활약했다. 의병 해산 후에는 귀가하지 못하고 각지를 전전하던 중 부일배(附日輩)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옥사 순국했다. 1906년 면암 최익현이 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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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광복군. 이정득(李廷得)[1918~1995]은 1944년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해서 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했다. 이정득은 1918년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이정득은 1944년 4월 15일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해서 지대 본부요원으로서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이정득이 활동한 광복군 제1지대는 1942년 7월 한국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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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존철(李存哲)[1895~1949]은 어려서부터 이석용 의병장과 친교를 맺었던 인연이 있었고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했다. 그런 연유로 이석용 의병장이 일제에 의해 사형당한 뒤 이석용의 순국을 애도하며 항일의식을 길렀다. 이존철은 1939년 4월 이원영(李元永)·심한경(沈漢卿) 등 평소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이석용의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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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 이태종(李泰鐘)[1889~1925]은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출생했으며, 항일구국투쟁을 결의했던 고흥유씨 12인 중 유중화(柳重和)의 외조카이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의 국제적 우위를 확인받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노골적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전략을 추진해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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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창여(全昌汝)[1888~1973]는 1919년 4월 4일 전라북도 익산군 익산면 장날 김치옥, 박동근, 김순경 등이 주도한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전창여는 이리[익산] 장날 장터에 모인 3백여 명의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면서 시위행진을 주도했다. 일본 경찰의 무력 탄압으로 시위는 해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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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태순(全泰順)[1885~1961]의 본관은 천안(天安)이고, 본명은 태섭(泰燮), 자는 창여(昌汝), 호는 의당(義堂)이다. 전태순은 1885년 완주군 봉동읍에서 전좌현(全佐鉉)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전태순은 종사랑, 임중추원의관, 서주임관 등을 역임했고 창릉(昌陵)의 정자각을 개수할 때 감독을 맡아 공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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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대원(丁大元)[1862~1929]은 1919년 3.1운동의 소식을 듣고 3월 2일 전라북도 익산군 천도교 사무실에서 교구 임원, 교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실천 방법을 의논했다. 정대원은 익산군 황화면·팔봉면 지역의 동원책임자가 되어 익산군 내 황화면과 여산읍 등지에 독립선언서 등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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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병은(鄭炳恩)[1911~1966]은 완주군 출신으로 사립 삼례영신학교(私立 參禮永新學校)를 졸업한 후 1925년 4월 전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했다가 1928년 3월 퇴학당했다. 정병은은 1930년 2월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동조 시위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귀향한 정병은은 1933년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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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회일(鄭會一)[1923~1993]은 1945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해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정회일은 1945년 2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에 입대해 서주(徐州) 지구에서 활동했다. 1945년 5월에는 국내정진교육훈련반(國內挺進敎育訓練班)에 편입되어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회일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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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근우(蔡槿宇)[1902~1973]는 노령(露領)으로 망명해서 1920년 대한의용군에 입대한 후 여러 부대에서 활약하던 중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서 복역한 독립운동가이다. 채근우는 아버지 채기상과 어머니 광산김씨 사이에서 2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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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두영(崔斗榮)[1851~1933]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통분을 이기지 못하던 중 1913년 매국노 이완용에게 치죄문을 보냈고, 일본 왕·조선총독·전라북도지사에게는 항일 규탄 문서를 발송했다. 치죄문(治罪文)과 항일 규탄 문서(抗日糾彈文書)를 발송한 일로 최두영은 191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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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출신의 의병. 유태석(柳泰錫)[1871~1922]은 비봉면 내월리의 유씨 집안 청년들과 함께 1906년 유지명 의병대에 참여해 주로 군자금 모금을 맡았다. 의병대 해산 후 은둔생활을 하다가 1916년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사망했다. 유태석은 월곡처사 유종흥(柳宗興)의 7대손이다. 유태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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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출신 독립운동가. 이우성(李愚誠)[1905~1948]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괴하(槐下)이다. 아버지는 이현신(李顯新)이다. 이우성은 삼례공립보통학교[현 삼례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주도립사범학교[현 전주교육대학교] 특과 2부 과정을 수료하고, 1926년부터 1930년까지 전라북도 내 장수공립보통학교(長水公立普通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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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출신의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 양칠성(梁七星)[1919~1949]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출신의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이다. 양칠성의 일본식 이름은 야나가와 시치세이[梁川七星]이며, 인도네시아어로는 KomArudin이다. 양칠성의 작은아버지는 양금암(梁金岩)이며, 숙모는 최은동(崔銀東)이다. 사촌은 양남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