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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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池里鄭禹洪旌閭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Gate for Jeong U-hong in Sinji-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954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742년 2월 - 신지리 정우홍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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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정우홍 정려각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954 |
성격 | 효자각 |
양식 |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에 있는 정우홍의 정려.
[개설]
정우홍은 하동정씨로 1713년(숙종 39) 정진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모를 공양하는데 효성이 지극했다. 정우홍이 11살 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대변의 맛을 보면서 병간호를 했으며, 19세 때에는 아버지가 값자기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자 막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하자 꿩 한 마리가 마당에 뛰어들었다. 또한 어머니가 병환이 들어 겨울인데 물고기를 드시고 싶다고 하자 정우홍이 냇가에 나가 얼음판 위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이리저리로 다니니까 잉어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1734년(영조 10) 12월에 아버지가 위급해지자 정우홍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서 효험을 보아 13년을 더 살았다. 또한 어머니가 괴질에 걸려서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해서 회복되었다. 정우홍은 부부가 함께 부모 공양에 극진해 시종일관 좋은 음식으로 정성을 다해서 봉양했으며 돌아가신 뒤에도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1742년(영조 18)에 2월 정문을 내렸다.
[위치]
신지리 정우홍 정려각은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가목마을 회관 앞에 있다.
[변천]
1742년(영조 18) 2월에 정우홍이 명정되었고, 1743년(영조 19) 4월에 정문을 지었다. 정우홍은 장수해서 1785년(정조 7)에 73세로 사망했다. 정문의 내용은 소수중(蘇殊中)이 발문을 지었고, 이신회(李身晦)의 후기가 남아 있다. 신지리 정우홍 정려각에는 장손 정성열의 사적문과 유일성의 정문서가 걸려 있다.
[형태]
신지리 정우홍 정려각은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크기가 153×150㎝이고, 편액의 크기는 130×3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