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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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羅北道各郡邑誌高山郡1899 |
영어공식명칭 | 『Jeollabukdogakgunupji』「Gosan-gun」1899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전라북도각군읍지』중 고산군[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해당하는 읍지.
[개설]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9는 1899년(광무 3) 전국 읍지상송령 이후에 만들어진 전라북도(全羅北道) 26군(郡)의 읍지(邑誌) 중 고산군에 관한 읍지이다.
[편찬/간행 경위]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9은 현존하는 제1차~제3차 『호남읍지』에 이어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한 듯하다. 이 시기에 작성된 다수의 읍지들이 개별 읍별로 제작된 데 비해서 양식은 동일하지만, 한 개 이상의 도를 단위로 합철한 점이 특징적이다. 광무 연간[1897-1907] 새로이 편찬된 읍지들이 모두 합철되지는 못했으나, 양식의 통일성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도지(道誌) 차원 이상의 전국지(全國誌) 규모의 작업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9는 1책 152장의 필사본이며, 크기는 세로 33.3㎝, 가로 23.5㎝이다.
[구성/내용]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9의 목차는 고산군지도(高山郡地圖)[채색지도],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방리(坊里)‚ 도로(道路)‚ 산천(山川)‚ 성씨(姓氏)‚ 학교(學校)‚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역원(驛院)‚ 사찰(寺刹)‚ 누정(樓亭)‚ 물산(物産)‚ 진공(進貢), 상납(上納)‚ 호구(戶口)‚ 전결(田結)‚ 봉름(俸廩)‚ 조적(糶糴)‚ 고적(古蹟)‚ 관속(官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일부 군현에는 있으나 고산군에 없는 항목은 성지(城池)이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간략하지만 봉름(俸廩), 관속(官屬)에서는 지방제도 개혁 이후 관원(官員)과 급료액(給料額)이 실려 있고‚ 상납(上納), 호구(戶口), 전결(田結)은 변화 내용을 반영하고 있으며, 조적(糶糴)에서도 사환미(社還米)와 석수(石數)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경제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전라북도각군읍지』 「고산군」1899는 1899년(광무 3)의 전국 읍지상송령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각군읍지는 모두 통일된 항목과 기재양식으로 작성되어 내용에서 상략(詳略)의 차이가 적고 항목의 출입이 없다. 광무연간에 작성되는 읍지의 전형적인 양식을 띠고 있으며, 이때 작성된 개별 읍지의 합철로 보인다. 통일된 항목에는 지방재정과 관계되는 내용이 중심이다. 이는 지방제도 및 지방재정 실태 파악에 관심이 두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로 미루어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 전라북도를 포함한 고산군의 사정을 개략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목차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다른 읍지와 달리 인물 정보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또한 풍속(風俗), 형승(形勝), 고사(故事) 등의 문화정보도 누락되었다. 이것은 중앙의 읍지 편찬 목적이 실질적인 통치 정보의 확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