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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행정 단위. 행정 구역은 나라의 행정 사정에 따라 다른 데, 우리나라는 현재 특별시·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이로 구획되어 있다. 그러나 선거구 등 특별한 목적으로 구획되는 행정 구역이 있으며, 이는 일반 행정 구역을 토대로 인구의 비례에 따라 결정된다. 행정 구역은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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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북부 지역을 포괄하는 행정 구역.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실시로 이전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통합되어 제주도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주(濟州)라는 명칭은 1223년(고종 10)경에 탐라군(郡)이 행정단위 개편으로 제주로 불려진 데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먼 바다를 건너가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제주시는 탐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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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한 행정동이자 법정동. 제주도의 관문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현재 제주항이 입지해 있고 제주시의 대표적인 명소인 사라봉 공원이 있다. 산지천의 포구인 건입포와 관련이 있는데, 건입포는 과거 건들개로 불렸다. 일설에 의하면 건방(乾方)에서 맥(脈)이 들어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7세기경에 조씨와 임씨가 산지천의 하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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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도근천(都近川)의 안쪽이 되는 마을로 내도그내, 내도그리, 내도근리, 안도근내로 불리다가 내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1300년대 초 외도동에는 수정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도그내 하류 포구 일대에는 방호소와 수전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포구 서쪽인 안도그내에도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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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과 해안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이 지역은 최근 택지 개발 지구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거주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노형(老衡)은 노형(櫓形)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노형(櫓形)은 지형이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형태여서 붙여졌다 한다. 그러나 노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6백여 년 전 사냥과 목축을 생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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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2동에 속하는 법정동. 도남동을 돌로리라고 하는데, 다른 마을에는 호열자가 번져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으나 이 동네만 ‘빼놓고[돌라 놓고]’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또한 제주성을 동·서로 가로 지르는 길이 있었는데 이 길 주위의 마을에 ‘道’ 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즉 길의 남쪽이라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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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 1동·도두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동쪽으로부터 용두암-도두봉-이호 해변을 연결하는 해안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도로변에는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입지하면서 해안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의미와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 섬의 북쪽, 즉 ‘섬의 머리’라는 뜻을 가진 ‘도두(島頭)’에서 유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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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370년경 광산 이씨의 조상이 설촌하였다고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들봉 아래가 되므로 도돌, 도들, 도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두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도두 1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행정동인 도두동에 속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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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들봉 아래가 되므로 도돌, 도들, 도도리, 도두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두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도두리의 일부를 갈라 도두 2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행정동인 도두동에 속하게 되었다. 북쪽은 제주 해협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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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지형이 동그랗게 생긴 들이 있어 도련평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련드르, 도련이드르, 도려이, 도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옛 도련리 지역과, 삼양리와 봉개리 일부를 통합하여 도련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시에 편입되어 도련리를 나누어 도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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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련드르, 도련이드르, 도려이, 도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옛 도련리 지역과, 삼양리와 봉개리 일부를 통합하여 도련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시에 편입되어 도련리를 나누어 도련 1동과 도련 2동으로 갈랐으며, 1962년 1월 1일 제주시 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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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넓은 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벵듸라 하다가 한자 차용 표기로 평대라 했다. 구좌읍 평대와 구별하기 위해 나중에 도평대라고 하다가 대를 생략하여 도평이 되었다. 도평대(都坪代)의 도(都)는 크다는 뜻이고, 평대는 벵듸를 뜻하는 한자어이며, 다시 평대의 대가 줄어 도평(都坪)이 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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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회천동·용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바다와 접하지 않은 중 산간 마을로 여러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봉개악(奉蓋岳) 혹은 봉개 오롬을 중심으로 인근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봉개 마을이라 하였다. 봉개라는 명칭은 봉가(奉哥) 성을 가진 사람이 이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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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문 로터리 동쪽과 제주 삼성혈의 남쪽 지역에 해당되는데, 1976년 토지 구획 정리 사업과 더불어 서광로 주변에 형성된 제주시 최초의 신도시 개발 지역이다. 이는 제주시의 인구 증가를 수용하며 중산층 주거 지역으로 발전하였다. 본래 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옛날 제주 삼성혈에서 양을라, 고을나, 부을나의 세 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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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중심 지역의 하나로 삼도 2동은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이 거주한 유서 깊은 탐라의 발상지이며, 삼국 시대부터 탐라국의 행정 중심지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삼도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 제주시에 편입되어 삼도 1동과 삼도 2동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부터 과거의 묵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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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 1동·삼양 2동·삼양 3동, 도련 1동·도련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제주시 동부권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형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에서 다양한 생활 도구와 곡물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인간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도시와 농촌, 그리고 어촌의 생활과 경관이 어우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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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제주시 동부권의 관문 역할을 하며, 농업과 어업, 그리고 도시적인 생활이 함께 공존하는 근교 지역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지역으로 서흘개[서흘포] 가 되므로 서을개, 서흘 또는 삼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삼양이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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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제주시 북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삼양동의 중심지로서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다. 본래 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서흘개의 가가 되므로 서흘, 서흘포, 서을 또는 삼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양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삼양 2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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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속하는 법정동. 제주시 북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삼양동 안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이며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다. 본래 제주군 지역으로 서흘개가 되므로 서을개, 서을포, 서흘 또는 삼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삼양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삼양 3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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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 남쪽의 한라산 정상부에서 길게 뻗어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아라(我羅)라는 말은 현재의 아라 1동 지역을 1700년대 아라위 또는 인다라라 불리운 것에 기원하며, 아라리(我羅里)는 『제주삼읍전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지금의 아라 1동과 아라 2동을 말한다.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고 다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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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군위 오씨(軍威吳氏)의 선조가 난산리에 살다가 5백년 전 이곳에 터를 잡으며 형성되었다고 한다. 군위 오씨 뒤를 이어 담양 전씨(潭陽全氏),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입촌하게 되었고, 아란 마을은 오랫동안 세 성씨의 집성촌이었다. 고종 을미년에 군위 오씨 일가와 거마에서 이주한 양씨가 대원 마을을 이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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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450년전 강씨와 부씨가 물 좋은 곳[알새미]을 찾아들면서 금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금천에 거주하던 남평 문씨가 약 330년 전에 아래쪽으로 거처를 옮겨 월두 마을을 형성하였고, 간월동[간드락]은 여씨 조상들이 부근에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아라우, 아란동,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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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70년대 중반까지는 농촌이었으나, 1977년 신제주 건설 계획이 확정된 뒤 새로운 시가지가 건설되면서 관공서, 관광 관련 시설, 그리고 주택가 등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발전한 지역이다. 원래 있었던 마을인 ‘닛골[잇골]’의 한자 차용 표기인 연동(延洞)의 변칙 표기인 연동(蓮洞)에서 유래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연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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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마을. 예로부터 가시남물 또는 가시나물이라 불렀는데, 이는 ‘가시남+물’의 구성으로 보인다. 가시남은 가시나무[가래나뭇과의 돌가시나무, 북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대응하는 제주어이다. 곧 가시남에 있는 물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시남물이나 가시나물이라 부르다가 갓남(㖙南), 갓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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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마을. 이 동은 예로부터 알무드내을이라는 데서 알무드내’ 불렀다. 알무드내는 무드내[無等川] 아래쪽에 있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17세기 고지도에 ‘무등천촌(無等川村)[무드내을]’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알무드내에 있는 마을을 알무드내을이라 하여 하무등천촌 또는 하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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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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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 1동·오라 2동·오라 3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연동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시가지 중심 남쪽의 중산간 지대에 있다. 제주 종합 경기장과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위시한 도심과 공항 주변으로 연결되는 녹지 지대, 그리고 한라산 북사면으로 전개되는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다양한 생산, 생활 환경 특성을 보인다. 오라동은 옛 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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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1동의 옛 이름은 ‘오라호’이다. 오라호는 민군에서 ‘오라위’로 변하였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오라 1동은 속칭 '모로냇가름'이라고 하며 한내를 끼고 있다. 마을 남쪽에 '내머리왓'이 있는데, 한내의 머리에 해당하는 밭이란 뜻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모르내[한천] 가가 되므로 모르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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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2동은 사평마을, 연미 마을, 정실 마을, 동성 마을을 포함한다. 연미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문(文)씨에 의해 설촌되었으나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네에 판 큰 연못에서 연미라는 마을 이름이 연유한다. 정실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여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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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3동은 옛이름은 ‘랑굴’과 ‘구아랑’이다. 랑굴은 민간에서 '중댕이굴' 또는 월구(月龜)라 한다. 굴은 구렁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모르내[한천] 가가 되므로 모르내가름, 모로동, 오라위, 월라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라리라 해서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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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 1동·외도 2동·내도동·도평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최근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이 제주시 내에서 생업에 종사하나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더 많다. 이곳의 한가운데를 북류하는 도근내 혹은 도근천(都近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도근천의 하류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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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외도동 전체 인구의 약 75%가 거주한다. 최근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제주시에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여타 주민들은 대개 근교 농업에 종사한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근내 바깥쪽이 되므로 외도, 외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도리라 하여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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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제주시 서쪽 끝에 위치하며, 외도동 전체 면적의 약 4%, 인구의 약 7%를 차지하는 작은 동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근내 바깥쪽이 되므로 외도, 외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외도리라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제주시에 편입되어 외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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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웃무드내라고 불렸다. 이 마을에 ‘놀용이[飛龍]’이라는 언덕이 있어서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용강(龍崗)이다. 일찍부터 농경, 목축을 하며 마을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본격적으로는 17세기에 이르러 촌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의 지역으로서 영평동의 무드내 위쪽이 되므로 웃무드내, 상무, 상무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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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전체적인 형상은 동서의 길이가 짧고 남북으로 길쭉하게 되어 있다. 제주시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도시적 경관으로 변모한 지역이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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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북쪽에 위치한 해안가 마을로 용두암과 같은 해안 관광지와 더불어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이 위치한 지역이다. 도시적 경관과 농촌적 경관이 혼재된 도농복합지역이다. 관내의 법정동으로 용담 2동과 용담3동이 있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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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2동에 속하는 법정동. 용담 2동[법정동]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도시보다는 농촌적 경관이 우세하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형성되어 동쪽은 동한두기, 서쪽은 서한두기로 불리던 것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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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한라산의 밑 벌판이 되므로 다랏곳, 다랏굿, 월하, 월평이라 불렀다. 17세기 고지도에서 별라화촌(別羅花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다라콧을·다라쿳을’은 별라화촌 또는 별라화리로 표기하다가, 19세기에 별라리(別羅里)로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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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 구시가지의 중심인 중앙 로터리에서 광양 로터리를 잇는 간선도로 상에 위치한 지역이다. 고·량·부 삼성의 탄생한 제주 삼성혈이 위치해 있어서 탐라국의 발상지에 해당한다. 탐라국의 시조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라(高乙那)·양을라(良乙那)·부을라(夫乙那)가 땅에서 솟아 나와 활을 쏘아 거주할 땅을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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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남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최근 구시가지의 팽창으로 새롭게 변모된 곳이다. 제주시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많이 위치하고 있어서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고,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탐라국의 시조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라(高乙那)·양을라(良乙那)·부을라(夫乙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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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 1동·이호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해수욕장이 있어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동쪽으로부터 용두암~도두봉~이호 해변~외도동을 연결하는 해안 도로가 개설되고 도로변에는 횟집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입지하면서 해안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전통적인 자연 마을 중 하나인 백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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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에 속하는 법정동. 북쪽 해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과 숙박업에 종사하며, 해안에서 떨어진 남쪽 주민들은 근교 농업을 하는 비중이 높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백개 또는 백포, 백포동이 변하여 이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호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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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에 속하는 법정동. 면적과 인구 모두 이호동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북쪽 해안에 접해 있는 이호 1동과는 달리 대부분의 주민들은 채소와 화훼 재배 같은 근교 농업에 종사한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백개 또는 백포, 백포동이 변하여 이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호리라 하여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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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주시의 가장 중요한 간선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동문로와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는 중앙로인데 이들 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할 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외부 문물이 드나들던 산지천의 하구를 두고 있어 일찍부터 제주의 중심 취락으로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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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대단위 택지 개발로 인한 단독 주택 및 아파트 단지의 조성으로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이다. 일도 2동은 태고시 고(高), 양(梁), 부(夫) 삼신 중의 일신인 고을라의 거소로서 당시 제일도(第一徒)를 일도(一徒)라 칭하여졌으며, 조선 후기에는 제주목 중면 일도리라 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中面)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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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지형이 바다의 게와 비슷하고 정상이 평평할 뿐만 아니라 바다와 같이 마음이 평온함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부르게 되었다. 17세기 고지도에서 이생촌과 해안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 초기부터 이싕이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이생촌이라 하고, 해안 일대에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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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 1동·화북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제주시 동부권의 생활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제주의 관문인 화북포구를 통해 외부와의 문물 교류가 활발하였다. 최근에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옛 이름은 벨돗개 혹은 벳뒷개이다. 문헌상 화북(禾北)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중반부터 사용되었으나 이보다 먼저 별도(別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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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속하는 법정동. 화북 포구를 중심으로 외부와의 문물 교류가 활발하여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제주시 동부권의 생활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별인내[구 산천]가 되므로 별인내, 벨도, 별도동, 별도천 또는 화북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화북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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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별인내[구 산천]가 되므로 별인내, 벨도, 별도동, 별도천 또는 화북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화북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화북 1동과 화북 2동으로 개편되었고, 1962년에는 행정동인 화북동에 속하게 되었다. 해발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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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의 들에 샘물이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드르생이, 들생이 또는 야생동, 회천, 새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회천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에는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회천동이라 하였고, 1962년에 행정상 봉개동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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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행정읍. 18세기 중반까지 전라남도 제주목 좌면(左面)에 속했는데, 1874년 좌면이 동부의 구좌면(舊左面)과 서부의 신좌면(新左面)[지금의 조천읍]으로 분리되었다. 여기서 구좌면 또는 구좌읍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14세기 고려 충렬왕 때부터이다. 이때 김녕현이 설치되고 촌락 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제주군 지역으로 좌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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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짐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짐녕개[金寧浦] 주위에 들어선 마을이라는 의미로 김녕리라 하였다. 김녕의 정확한 뜻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고려 시대 문헌에 이미 김녕현이란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제주군 구좌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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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큰 흘[습지]이 있어 금을흘, 검을흘, 혹은 검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마을 내에 있는 검은술[검은 숲]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500여 년 전에 마을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좌면 지역으로 덕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덕천리라 하였으며, 194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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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예로부터 곳막 또는 골막이라 불렀는데, 이는 이 마을의 포구인 곳막개[변막포] 주변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동복(東福)이라는 지명은 20세기에 들어와 나타나는데, 동쪽에 있는 복 받은 마을이라는 의미로 새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500여 년 전 봉수와 연대를 지키던 이씨가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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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웃도의여이다. 도의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는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뜻하는 제주 고유어로서, 도의여는 현재 하도리 해안에 있는 토끼섬 일대를 부르던 이름이다. 약 550여년 전 경주 김씨와 정씨, 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좌면 지역으로 상도라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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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가는곶이다. 곶은 수풀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가는곶은 가늘게 뻗은 수풀 또는 덤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600여년 전 제주 고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곶면의 지역으로 세화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세화리가 되었다.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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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손당·소남당 또는 솔당으로 불렀다. 이는 당오름 소나무 밭에 당(堂)이 있어 그 당을 솔당 혹은 소남당이라 했고, 그 인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송당리라는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900여년 전에 제주 고씨와 송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좌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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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주민들은 무주애 또는 무주개라 불렀다. ‘무주’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개’는 포구를 뜻한다. 월정(月汀)은 마을의 모양이 반달 같고 바닷가에 접해 있다는 뜻으로, 또는 ‘달이 뜨는 바닷가’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약 400여 년 전 김해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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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종달(終達)’은 맨 끝에 있는 땅, 제주목의 동쪽 끝 마을, 또는 종처럼 생긴 지미봉(地尾峰)[165.3m] 인근에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종달은 종다릿개[終達浦]라는 포구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주민들은 종다리 또는 종달이라 부른다. 약 800여 년 전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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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벵듸 또는 벵디라고 부른다. 벵듸는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약 1,000여 년 전 제주부씨와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읍지』에는 벵듸마을로 표기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평대(坪岱)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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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도의여 또는 알도의여라 불렀다. 마을 동쪽 바닷가에 있는 토끼섬 일대를 도의여 또는 돈의여라 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약 700여 년 전 제주부씨와 제주고씨, 양천허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읍지』에는 알도의여 마을로,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하도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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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궤, 궤이 또는 괴리라 불렀다. 궤는 바위 동굴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마을 위쪽에 있는 궤동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600여 년 전 한양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읍지』에는 괴리(怪里),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한동리, 신전동, 하동, 방축동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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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어등개라 불렀는데 ‘어등’이 무슨 의미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등포(魚登浦)라는 포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부터 행원리(杏源里)라는 표기가 등장하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약 600여 년 전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읍지...
애월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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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한 읍. 『태종실록』에 애월현, 『탐라순력도』 등에 애월, 해월포로 표기되어 있고, 『제주읍지』에 애월을은 제주 서쪽으로 45리의 거리에 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18세기 중반까지 제주목 우면에 속하였으며, 본래 제주군의 지역으로 제주읍 내 오른쪽이 되므로 우면이라 하다가 금성천을 경계로 하여 구우면과 신우면으로 분리되었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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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고내다. 고내는 일찍부터 한자화 되었지만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내에는 고려 때부터 사람이 살았고 1280년(충렬왕 26)에 현촌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바다 수심이 깊은 해안선과 대양을 전망할 수 있는 고내봉이 있어 지세적으로 외적을 방어하는 지역으로 거주가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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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항바두리 또는 옛성을이다. 항의 가장자리와 같이 항바두리 토성이 타원형으로 쌓아져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고성(古城)은 항바두리 옛성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1271년(원종 12)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 우면(지금의 애월면)의 한 촌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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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항바두리 또는 옛성을이다. 항의 가장자리와 같이 항바두리 토성이 타원형으로 쌓아져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고성(古城)은 항바두리 옛성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1967년 전국에서 최초로 조성된 시범 양잠단지로 마을로 형성된 곳이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항파두리 또는 고성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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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곽지는 일찍부터 한자화하여 곽지라 하였다. 마을 안 여러 곳에 잣(잔돌로 쌓아 놓은 곳)들이 있어 곽기리(郭岐里)라 하였다가 곽지리(郭支里)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선사시대 패총과 유물이 곽금초등학교 일원 서쪽부터 금성 일원 남동쪽으로 0.5㎞까지 발견되는데, 일찍부터 용수가 이용 가능한 곳에 취락이 넓게 분산되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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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광령이며, 광령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마을 이름은 오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속칭이 전혀 없이 한 가지 이름으로만 불려 온 특징을 갖는다. 본래 제주군 애월면 지역으로 광령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령리가 되었고, 1963년 12월 12일 광령1리, 광령2리, 광령3리로 나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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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이신굴이다. 유신동으로 불리는데 이는 이신굴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고려 중엽부터 유목민들이 거주하였는데, 조선 성종 때 농토가 비옥하고 기후 조건이 온화하며 급수원이 있는 양호한 입지 조건을 따라 집단 이주자들이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애월면 지역으로 광령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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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준이다. 광령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1956년 광령3리로 독립하였다. 준이의 한자 표기는 자중동으로 광령3리의 본 이름이다. 고려 공민왕 10년경 송자종이란 사람이 육지로부터 입주하여 설촌했다고 전하며 그에 따라 마을의 이름도 ‘자종’으로 굳어진 듯하다. 조선 태종 때 송씨 몰락으로 폐동되었다가 조선 말기 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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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옛엄쟁이이다. 18세기 중반 이전에 엄쟁이에서 옛엄쟁이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교 전성기인 신라 말엽 내지 고려 중엽에 이르러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서쪽으로는 하천 하류의 삼전사, 남쪽으로는 원동산의 원수사가 있는 곳에 살았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엉장으로 되었으므로 엄정이·엄장·염장이라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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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모슬개 또는 모실개이다. 모슬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이름 지어졌다. 19세기 말 금성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금성이라는 이름은 잣르라는 지역에 잣담이 성처럼 쌓여 있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370년대 후반 왜구 침공으로 마을이 없어지기도 하였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모슬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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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과납 또는 납이다. 과납이라는 이름은 문서상 이외에는 거의 통용되는 이름으로, 과오름 남쪽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납읍(納邑)은 1675년(숙종 1)에 자연 지세가 여러 마을이 모여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읍과 같고, 납(納)자는 입주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최초의 거주는 130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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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도내미이다. 도는 입구로서 어귀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고, 내는 넘[越]의 변음으로 도를 넘는 곳이라는 뜻이다. 도내미오름(현 어도오름) 근처에 마을이 형성되어 지어진 이름이다. 마을의 설촌은 구전에 의하면 1600년(선조 33)에 설촌된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중반 어도내미을이라 하였는데, 이는 어름비(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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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상가리의 옛 이름은 웃더럭이다. 가락은 더럭의 한자 차용 표기인데 가(加)는 더의 훈가자 표기, 락(樂)은 럭의 음가자 표기이다. 더럭은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려 충렬왕 때 거주가 시작되었으며, 1300년(충렬왕 26)에 본리는 고내현 가락촌이 되었다. 1444년(세종 26)에 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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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원래 귀일현, 귀일을이라 하다가, 18세기 초반경부터 웃귀일[上貴]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38년(고종 25)에 고씨에 의해 처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1608년에 하귀리와 상귀리로 분리되었고, 고성리가 상귀리에서 1884년(고종 21)에 분리되었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광석동·광석·상귀일·상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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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쉐질이다. 소의 제주도 방언 쉐와 길의 제주도 방언 질이 합쳐져 소의 길의 의미를 가지며 쉐질 주변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한다. 19세기 초반에 쉐질을 표준어 소길로 인식한 뒤 이를 좋은 뜻을 가진 한자 소길(召吉)로 표기하였다. 1300년경 성씨·송씨·허씨가 입촌했다고 하며, 1600년경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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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믈메 또는 물미이다. 수산(水山)은 물메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정상에 물이 있는 물메오름[水山峯]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수산리라 하였다. 1373년(공민왕 22)에 최영 장군이 목호란을 평정할 때 적극 협조했던 진이백(秦李伯)이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이후 여러 성씨들이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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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새엄쟁이다. 18세기 중반 이전에 엄쟁이에서 새엄쟁이[新嚴]가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00년경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1765년(영조 41)경에 제주목 우면에 속한 마을로 신엄장리·중엄장리·구엄장리가 기록되어 있다. 1905년 이후에 중엄은 신엄에 포함되었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구엄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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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일 것 같으나, 일찍부터 한자화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애월이라는 음성형만 확인할 수 있다. 은 해안가라는 뜻인데, 은 월(月)의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 애월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애월리가 붙여졌다. 애월은 곽지 일원과 더불어 선사시대의 조개무지와 민무늬토기 파편 등이 발견되어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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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부멘이다. 설촌 문씨가 부부 갈등으로 가출한 후 남은 송씨 부인이 남편 얼굴을 보고 죽는 것을 소망해서 부면이(夫面伊)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일찍부터 부멘이라 하였다. 이 마을에 맨 처음 문씨와 송씨 부부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18세기 말까지 독립된 행정 마을이었으나 19세기 초반부터 어음에 통합되었다.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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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1964년부터 옛 어름비와 돌깍이 일대를 어음2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04년 갑자사화 당시 홍문관 교리였던 박후신이 노복 30여 명을 거느리고 유배되었는데, 그 일대에 비옥한 황무지를 개척하여 자기 호를 따라 정자촌(正字村)이라 칭하고 거주한 것이 오늘의 어음2리의 시초이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한라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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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송냉이와 용를이다. 사방의 소나무군[松浪]과 마을 동쪽의 용마루[龍旨] 동산으로부터 얻은 이름이다. 1950년대 초반 신엄에서 분리되어 용마루의 용이 흥한다는 뜻으로 용흥리라 하였다. 마을 농경지에서 약 2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시대의 유물인 돌칼과 돌도끼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취락이 형성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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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흐리믈과 검은데기인데, 흐리믈은 우물, 검은데기는 바위언덕을 의미한다. 조선 개국 초기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생수가 용출하여 사계절 끊이지 않고 물이 흐르는 언덕이란 의미로 흐리믈이란 지명이 생겨 오랫동안 불렸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흐리물과 검은데기를 금덕리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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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진밧 또는 장밧이다. 긴 밭이라는 뜻으로 장전(長田)은 한자 차용 표기이다. 진밧은 김통정 장군이 대몽항쟁 당시 장전 일대를 군사훈련 장소의 책임자에게 지급한 토지의 명칭에서 유래한다. 대몽항쟁 군사들과 제주 사람들이 촌락 형태를 이루어 집단적으로 살기 시작한 마을이다. 1948년 4·3사건 때 정부 소개령으로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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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중엄쟁이다. 동쪽으로는 구엄리, 서쪽으로는 신엄리의 중간에 위치하여 중엄장이(中嚴莊伊)라 불리어 왔다. 1560년경에 용천수와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거주가 시작되어, 1744년(영조 20)에 약 32호의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이때부터 중엄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1857년(철종 8)에 중엄리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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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하가리의 옛 이름은 알더럭이다. 가락은 더럭의 한자 차용 표기인데 가(加)는 더의 훈가자 표기, 락(樂)은 럭의 음가자 표기이다. 더럭은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18세기 초반 이전부터 더럭못 아래쪽을 알더럭이라 하였다. 고려시대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다가 1418년(태종 18) 현촌 고내리에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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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예전에는 동귀리였으나 1953년부터 귀일리와 함께 알귀일[下貴]에서 나뉘었다. 동귀리의 옛 이름은 군랭이인데 이의 한자표기인 군랑(軍浪)을 통해 삼별초 당시 항파두리성의 전초기지 및 군항지로 이용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한다. 삼국시대부터 촌락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1609년(광해군 1) 동서 방리 설치 때 하귀(下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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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예전에는 귀일리였으나 1953년부터 동귀리와 함께 알귀일[下貴]에서 나뉘어졌다. 고려시대 귀일촌의 중심 마을로서 지석묘가 있는 걸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1147년~1170년에는 대촌으로 설정되어 예로부터 주거지로 적합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귀일현이 있어서 귀일...
조천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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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읍. 조천(朝天)이라는 명칭은 14세기 초 조천관(朝天舘)이 설치된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조천이라는 의미는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순한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고 하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북촌리 고두기 언덕에 있는 자연동굴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인 토기와 골각기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인간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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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도리’이며, 주민들은 ‘도리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다리(橋)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약 700여 년 전 화전민들이 평평한 땅을 개간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제주군 신좌(조천)면의 지역으로 교래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래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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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또는 큰 습지였으므로 한흘이 되었다고 한다. 1730년경 유제륭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 백씨·차씨·송씨 등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이른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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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마을의 옛 이름은 ‘곱은달이’(古分洞)인데, 이는 구부러진 언덕이라는 뜻이다. 1855년경 제주한씨가 처음으로 용동(龍洞)에 들어왔고, 이후 진주강씨·나주김씨·제주고씨 등이 거주하면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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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뒷개 또는 뒷개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마을 뒤 또는 북쪽에 있는 포구라는 의미이다. 마을 동쪽 고두기 언덕에서 발견된 바위그늘집자리 유적은 기원전 1,000년 전후의 신석기 후기 유적으로 밝혀져 일찍부터 이곳에서 인간의 거주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장씨·이씨·윤씨 등이 이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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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선’은 ‘서(立)’에 ‘-ㄴ’이 붙은 것이며, ‘흘’은 돌무더기와 잡풀이 우거진 곳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므로, 선흘은 곧 잡풀이 많이 우거진 넓은 돌밭, 곧 곶자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650여 년 전에 처음으로 현씨가 들어와 정착하고 이후 안씨가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신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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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선’은 ‘서(立)’에 ‘-ㄴ’이 붙은 것이며, ‘흘’은 돌무더기와 잡풀이 우거진 곳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므로, 선흘은 곧 잡풀이 많이 우거진 넓은 돌밭, 곧 곶자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옛 이름은 곱은달이 또는 곱은장이다. 약 350여년 전에 김해김씨, 문씨, 허씨 등이 처음으로 거주하면서 마을이 생긴 것으로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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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신촌리는 옛 이름인 ‘새마을’에서 유래하였으며 여러 문헌에 일찍부터 신촌(新村)으로 표기되었으나 왜 이 곳을 새마을이라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약 700여 년 전 처음으로 마을이 세워졌으며 약 400여 년 전에 웃마을 숙군 일대에 마을이 들어서고 그 후 해안가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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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왯개, 옛개 또는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함덕리와 조천리 일부를 분리, 통합하여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는데, 이는 ‘새로 일어난 마을’ 혹은 ‘새로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흥리 동쪽의 함덕리 유물 출토지에서 탐라시대 전기의 유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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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누온미[臥乎山] 또는 눈미[臥山]였으며 주민들은 눈미 또는 눈메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누운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450여 년 전 송씨가 처음 들어왔으며 그 후 정씨가 이주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내생잇동네·당오롬동네·종남밧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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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누온흘 또는 눈흘, 궷드르곶이다. 주민들은 ‘논을’ 혹은 ‘눈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넓게 펼쳐진 큰 숲’을 뜻한다. 약 400~500여 년 전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와흘리, 상동, 고평동, 수기동 등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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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조천리(朝天里)는 조천관(朝天舘)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옛 문헌에 따르면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순한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약 800년 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14세기 초에는 조천관이 건립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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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함덕리(咸德里)의 ‘덕’은 너럭바위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함씨 할머니가 놓은 돌다리 곧 ‘함다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약 7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함덕현이라 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한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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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한 읍. 한림의 옛 이름은 한술 또는 한수풀이다. 한술의 한은 큰의 뜻을 가진 고유어이고 술은 수풀 또는 덤불의 뜻을 가진 제주도 방언으로, 한자로 대림(大林)으로 표기된다. 한림(翰林)이라는 표기는 19세기 말 자료인 『제주군읍지』 등에 나타난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1002년 한림읍 북방 4㎞ 해상에 화산이 폭발하여 비양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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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강구못이다. 그 뜻은 확실하지 않으며, 한자로 강구(江龜)지만 음을 빌어 쓴 표기로 뜻은 관련이 없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 위치한 강구못[江龜池] 부근 속칭 까마귀 빌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나 폐촌이 되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수풀이 많았으므로 한수풀·다림·대림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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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돌여 또는 돌덕이다. 이 마을 사동 북방 0.5㎞ 해상에 큰여, 작은여라고 불리는 자연용암의 섬이 2개 있는데, 이것을 석천도(石淺島)라고 불렀고 마을 이름을 석천촌(石淺村)이라고 하였다. 1300년(충렬왕 16)에 제주도에 14현을 설치할 때 이 지역에서 무인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중국 중경 지방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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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쉐못개와 진질코지이다. 지금의 나신동에 있는 포구 이름은 쉐못, 장라동의 일부는 진질코지라 불렸다. 고려시대 귀덕현으로 불렀으나, 조선시대 방리제를 실시하면서 귀덕리가 되었다.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은 장로동이며, 차차 내려오면서 장흥동(망전동 포함), 라신동으로 이어져 오게 되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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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자연마을인 머흘왓과 한다리를 통합하여 새로 흥성한 마을이라는 데서 신흥동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형성되어 큰 마을을 이룬 후 조선 인조 때 귀덕리 하동에 살던 장(張)씨가 마을을 이룬 것으로 전해온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고려 때 귀덕현이 있었으므로 귀덕골·귀독·귀덕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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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베렝이다. 베렝이는 벌레의 뜻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마을 안에 있는 속칭 금동산이라는 이름에서 따와 배령리(盃令里)라 하였다고도 한다. 1002년 전 비양도가 용출하기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용출에 따른 침수로 주민들이 전멸한 뒤 새로이 거주가 시작되었다. 18세기 중후반까지는 행정 단위의 마을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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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금을오롬 또는 검은오롬이다. 이의 한자 차용 표기가 금물악(今勿岳)이며, 19세기 말부터 금악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23년경 수류촌에서 금물악으로 분리되었다. 논밭과 축산지대로 생활터전이 마련된 부촌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과다 공출, 1946년의 콜레라 발생, 그리고 1948년 4·3사건으로 소개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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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한술과 선돌이다. 한술은 한수풀이라고도 하며 울창한 숲을 말하며, 선돌은 고인돌을 말한다. 대림은 한수풀의 한자 표기로 두 마을인 대림촌과 입석촌이 행정상 한마을로 합쳐졌음을 알 수 있다. 1884년 방대한 지역 특성으로 인해 3개 리, 즉 상대·중대·하대(지금의 한림리)로 분리되어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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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진근이다. 진에 가까운 곳이라는 의미이며, 19세기 중후반에 명월진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동멩월[東明里]이라 하였다. 용천수가 풍부한 수류천촌(명월리) 등지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고려시대 제주에 동·서현을 설치하였을 때 서현의 중심지였고, 1608년(태조 41)에 방리가 설치되자 동명리는 우면(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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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은이라는 고유어로 불리다, 명월진이 세워진 뒤에 명월이라 하였다. 19세기 초반 명월이 마을 이름으로 정착하였고, 20세기 초반까지 서멩월[西明月]이라 하다 1905년 이후 ‘서’자를 빼고 명월이라 하였다. 1300년에 제주에 동·서현을 설치할 때 명월현이 되었다. 1608년 조선시대 방리제가 설치되자 명월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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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비양셤이다. 민간에서 비영섬·대섬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의미와 근거는 확실치 않다. 고려 말 해상 방어를 위하여 망대를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있으나, 1876년(고종 13)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협재리에서 분리되었다. 비양봉[114m]의 봉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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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존귀술, 민간에서는 종구실이라 한다. 존귀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며, 19세기 중후반에 상대리로 표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36년(인조 14)~1637년의 병자호란 중에 동쪽에 인동장씨, 서쪽에 제주양씨가 거주를 시작하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큰 촌락을 이루어 마을 이름이 대촌리(大村里)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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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1891년까지 명월리로 불렸으나 명월리의 구역이 너무 광범위해 지역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명월리 위에 있다는 상(上) 자와 명월리에서 분리했다는 뜻에서 명(明) 자를 따서 상명(즉 웃명월)리라 부르게 되었다. 1794년경부터 사람들이 이주해와 살기 시작했다. 자연 마을인 동동·중동·서동·하동 등 4개 동으로 형성되었었으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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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날부터 조물케라고 불러왔다. 조물케란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던 용천수가 만조 시에는 전부 바닷물 속에 잠겨있다는 데서 또는 잠녀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하는데, 한자로 표기하여 잠수포(潛水浦)라고 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수원리로 개명되었다. 1720년(숙종 46)에 한림읍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수원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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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독개 또는 덕개이다. 제주방언 덕은 바위 너설로 이루어진 포구 또는 하나뿐인 포구라는 뜻을 가진다. 1910년경에 옹포리(瓮浦里)로 표기되었는데, 옹포리(甕浦里)로도 적는다. 1580년경 이주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명월포구(지금의 옹포포구)를 이용, 비양도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왜선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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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감은질, 즉 검은 길이란 뜻이다. 1990년대 초반에 한자 표기로 월령(月令)이라 하였다. 지형이 반달형이라서 월령이라 하였다고도 하나, 한자 표기 월(月)을 중시한 해석으로 보인다. 18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월령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령리가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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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명월의 월과 한림의 림을 따서 월림이라 하였다. 사냥을 하기 위해 속칭 음부리 일대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마을이 생겨났으며, 일제강점기 때 지도에 음부(音富)로 표기하고 있다. 4·3사건 때 마을 전체가 해안지역으로 소개하였다 이후 재건이 되었다. 1935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당시 한림면 웃맹월[上明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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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알한술 또는 알한수풀이다. 한술[大林]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한자음으로 하대 또는 하대리라고 한다. 한림(翰林)의 한(翰)도 고유어 한[大]의 음가자 표기이다. 1750년경 대림리에서 현재 한림1리, 한림2리 일대는 느티나무와 참나무, 순북이나무 등으로 우거진 숲이었는데, 밭을 개간하면서 산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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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알한술이다. 19세기 말부터 알한술 지역을 한림이라 하였고, 한림(翰林)의 한(翰)도 고유어 한[大]의 음가자 표기이다. 당초 대림리의 한동네였던 것이 1884년 한림으로 분리된 뒤 독립된 마을로 발전해 왔다. 이 무렵 지금의 한림2리 어귀인 안동네에 김해김씨의 선조가 살았다고 전한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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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진동산이다. 진동산을 한자로 표기하여 장원동이 되고, 장원동이 한림3리가 되었다. 한림(翰林)의 한(翰)도 고유어 한[大]의 음가자 표기이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한수풀·다림·한림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한림리가 되었으며, 1956년 7월 8일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원래 한림2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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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하물개와 연딋개다. 하물개는 큰 물의 포구를, 연딋개는 연대가 있는 포구를 뜻한다. 1595년(선조 28) 이 지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한림항 공사를 위해 한수리 가옥들이 일부 철거되고 한수리의 모래를 운반 매립하였다. 모래 밑에서 흙이 나오고 유물이 발견되어 오래된 거주지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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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섭재이다. 협은 민간에서 섭이라 하는데 협이 구개음화한 제주도 방언이다. 섭재라는 이름으로 탐라시대까지 통용되었다. 고려 때 명월현에 속하면서 마을로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바다 해일과 거친 바람에 따른 모래를 피해 생활 주거지를 동쪽으로 점차 이주하여 포구 지역과 내륙 지역이 서로 연계된 긴 촌락형태를...
우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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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면. 예부터 쉐섬 또는 소섬이라 불렀다. ‘쉐’는 소의 제주도 방언으로, 멀리서 보면 섬의 모양이 누워 있는 소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1679년 국유목장이 설치되어 나라에서 사용할 말들을 사육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시작되었다. 1840년대부터 일반인들도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허락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입도하여 정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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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저녁이면 서쪽으로 지는 해, 곧 석양이 곱게 비치는 마을이라 해서 서광리라 불렀다고 한다. 약 100여년 전 목장을 개간하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좌면 지역이었는데, 1986년 4월 1일 구좌읍 연평출장소가 우도면으로 승격될 때 자연마을이던 우목동이 법정리인 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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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흥동·전흘동·삼양동·상고수동·하고수동 등 5개의 자연마을이 모여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하여 오봉리(五逢里)라 부른다. 1986년 구좌읍 연평출장소가 우도면으로 승격됨에 따라 이미 있던 5개 마을을 합하여 법정리인 오봉리라 하였다. 오봉리는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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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조일리(朝日里)는 ‘아침에 햇살이 제일 먼저 비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약 100여 년 전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목장을 개간하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조일리는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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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민들은 하나리 또는 한나리라 불렀으며 천진리(天津里)는 ‘큰 나루’라는 뜻의 천진(天津)에서 유래하였다. 약 150여 년 전 우도를 개간하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천진리 남동쪽에...
추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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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면. 조선조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추자도(楸子島)라는 표기가 등장한다. 한자의 뜻을 살려 개오동나무나 가래나무와 관련시켜 지명 유래를 해석하기도 하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1271년 삼별초의 난 때 고려군과 몽고 연합군이 폭풍우를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물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전라도 나주목 탐라현에 소속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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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주민들은 큰작지라 불렀다. 추자도 서쪽의 큰 마을이라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약 300여 년 전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추자도 지역으로서 고종 때 완도군 추자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의 횡간도를 편입하여 대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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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주민들은 묵이 또는 무기라 불렀다. 산으로 둘러싸여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묵이라 했다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약 100여 년 전 정씨와 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추자도 지역으로서 고종 때 완도군 추자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묵리라 하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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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가장 먼저 해가 뜨고 햇볕을 직선으로 받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양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약 300여년 전 해남윤씨와 전주이씨, 동복오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추자도의 지역으로서 고종 때 완도군 추자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신상리·신하리·장작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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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진작지라 불렀다. ‘진’은 길다(長)는 뜻이고 ‘작지’는 자갈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동쪽 해변에 길게 발달한 자갈 해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400여년 전 창원황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추자도 지역으로서 고종 때 완도군 추자면에 편입되었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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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주민들이 절기미 또는 절구미라 불렀다고 하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1914년 전라남도 완도군 추자면에서 제주군 추자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마을 이름도 ‘영원히 흥하라’는 뜻으로 영흥리로 바꾸었다. 약 300여 년 전 밀양박씨와 전주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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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 300여 년 전 함안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에 예초리가 나타난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예초...
한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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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구역. 18세기 중반까지 제주목 우면에 속하였다, 18세기 후반 우면이 신우면과 구우면으로 분리되며, 구우면에 속하였다.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제주목 구우면, 제주군 구우면에 속하였다가, 1935년 3월 15일 구우면이 한림면으로 개칭되었다. 1956년 7월 8일 한림면을 폐지하고 한림읍과 한경면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때부터 북제주군 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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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자귓벵듸 또는 당오롬과 높구메다. 고산은 높구메오롬, 오늘날 수월봉의 한자 차자 표기이다. . 고려 말에 성을 쌓고 말을 기르던 곳이었으며, 1440년(세종 21)에 큰 성을 쌓고 성내에는 군기고까지 마련하였던 중요한 요새지였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차귀진이 있었으므로 차귀진·차귀소·차귀 또는 두모리에서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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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자귓벵듸 또는 당오롬과 높구메다. 고산은 높구메오롬으로 오늘날 수월봉의 한자 차자 표기이다. 1300년(고려 충렬왕 26)에 차귀현촌의 설치로 거주가 시작되었으며, 왜구의 침입이 심하여 차귀진성을 축조하였다. 1837년 두모·금등 지역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와 신두모리라 불리다가 1861년 당산봉을 근거로 당산리·차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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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한개다. 큰 포구의 뜻으로 대포(大浦)로 표기되기도 했다. 판포리와 두모리 사이의 작은 마을로 옛 중국의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조그마한 등나라 등(騰)자를 따서 금등리라 불렀다고 한다. 19세기 말까지 두모리에 속하다가, 20세기 초에야 금등이 나타난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금등이라 하였는데,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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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섯세미다. 서쪽에 있는 샘이라는 뜻으로, 좋은 샘의 한자 표기가 낙천이다. 1660년경 전라남도에서 입도한 송(宋)씨 일가가 주물 공예에 필요한 양질의 토지를 찾아 안착하며 거주가 시작되었다. 원래 섯세미을이라 불렀는데 18세기 중반까지 독립된 행정 마을이었다가 이후 조수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에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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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두못개 또는 두묏개이다. 예전 기록에 두모포·두모을 등으로 표기되며, 민간에서는 두믜 또는 두미라고 한다. 두모나 두무의 음성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두모는 둥글다는 뜻으로 보인다. 대략 16세기 말 마을이 취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두모·두모촌·뒤미·디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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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산양이 산양리 북동쪽에 신서악(새신오름)이 있어 그렇다고 추정하고 있지만, 산의 남쪽이라는 뜻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1953년 이전까지 청수리에 속해 있었으나, 한림면을 분리하여 한림읍과 한경면을 설치할 때 자연 마을인 청수리에 속해 있던 수룡동·연화동·월광동을 독립시켜 산양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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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날 두모에 속하였다. 민간에서 솔개 또는 솔래라고 하는데 신창리 바닷가를 이른다. 한자 그대로 새로 창성한 마을[新昌]의 뜻이다. 1910년 두모리에서 분리되어 두모 서남쪽 일부와 신창리 바닷가 일대가 신창리가 되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두모리에서 갈려 새로 번창하므로 신창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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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용소 또는 용못이다. 용당은 한자 뜻 그대로 용못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1600년 조선 광해군 때 속칭 산밭승물 이라는 곳에 7호가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두모리에 속했으나, 19세기 말부터 용수리에 속하였다. 1963년 한림면 용수리의 일부를 갈라 용당리라 하여 한경면에 편입되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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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지삿개와 벗개다. 지삿개는 기와를 구웠던 곳이라는 데서 붙여졌다고 하나, 벗개는 뜻이 확실하지 않다. 용수리는 19세기 후반 붙여진 좋은 물이 많이 나는 곳 또는 용당리에 있는 용못의 한자어 표기에서 왔다. 1418년(태종 18)에 왜적이 차귀 등지에 침입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거주는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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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닥 또는 닥르이다. 저지는 한자 차용 표기로, 저는 닥나무, 지는 마르의 한자 훈 표기이다. 약 1500년대 물을 따라 정착이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 번성하여 조선 숙종 때는 당지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었다 18세기 초부터 저지라는 마을 명칭이 사용되어 왔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닥나무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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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죠믈, 즉 좋은 물이다. 조수는 좋은 물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1610년에 처음 입주한 것이 마을의 시작이라고 한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조호수·조수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조수리가 되었다. 1974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옛 조수리 일대는 조수1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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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븕으못 또는 븕은못이다. 못이 붉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864년 식수와 농토를 얻기 위해 입주가 시작되었는데 토질이 붉고 점토질이어서 비만 오면 물이 흘러 지반이 얕은 곳으로 잘 고여 마을 이름을 븕으못이라 하였다. 1948년 4·3사건으로 소개되었다가 재건되어 신성동이라 하였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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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청수물이다. 민간에 남아있는 청숫물이라는 음성으로 볼 때 청수의 음독자 표기로 본다. 약 1650년경 여러 성씨가 거주하며 설물촌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저지리에 속해 있다가 분리되어 청수리라 칭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맑은 물이 있으므로 청수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청수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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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널개다. 판포는 널개의 한자 차용 표기로, 널[板]과 같이 넓은 개[浦]라는 뜻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판포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을 보아 15세기 중엽에 이미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판을포·판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판포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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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서린눈이다. 몸을 감고 누운 곳의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1855년 마을이 생긴 뒤 거주가 시작되었으며, 1961년 10월 1일 기존의 판포리 일부를 갈라 한원리가 신설되었다. 산간 마을과 해안 마을 중간에 낀 평지이다. 예부터 서리논이라고 불렸던 것을 보면 과거에는 눈이 많이 쌓이고 서리가 낄 정도로 기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