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T05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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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堂-地理的環境-歷史-由來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
집필자 | 이상수 |
[땅이름의 유래]
초당이라는 이름은 조선 광해군 때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의 부친 초당(草堂) 허엽(許曄)[1517~1580] 선생이 이곳에 살면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한편, 이곳에 사는 최씨들은 최씨들의 초당이라고도 하며, 조선 선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유동석이 초당을 짓고 후진들을 가르쳤다는 연유에서 초당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초당에 있는 여러 지명 중에 독특한 것으로 ‘어이넘재’가 있다. 화부산의 줄기가 갈라지는 곳인 어이넘재는 경포고등학교와 한국전력공사 사이에서 초당으로 넘어가는 재를 말하는데, 옛날에는 꽤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송정이나 초당동 마을사람들이 죽어서 장지를 바깥 동네에 정하고, 장례 때 상여를 메고 이 재를 오르려 하면 상여가 꼼짝 않고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상여가 이 재에 오르면 뒤따르던 상주나 상군들은 “어이, 어이” 하면서 곡(哭)만 하고 재를 넘지 못했는데, 상주는 이때 “어찌하여 상여가 넘을 수 없는가?” 하고 중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어찌 상여가 이 재를 넘을 수 있겠느냐”라는 뜻에서 ‘어이넘을 재’가 되고 이것이 줄어서 어이(넘)재가 되었다고 한다.
또, 옛날 강문에 사는 고기 장사가 포남동으로 고기 팔러 가다가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죽게 되었는데, 이때 가족들이 “어찌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죽었느냐?” 하고 슬피 울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편 땅재는 원래 당재[당지(堂地)]라고 하여 초당에 있는 재라는 의미인데, 발음이 굳어져 땅재라고 불리게 되었다. 땅재는 초당마을에서 포남동의 모안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기도 하며, 어이넘재 쪽에서 북서쪽으로 경포 방향을 향하여 쭉 뻗어 내린 줄기였으나 지금은 그 중간이 잘려나고 밭으로 변하였다.
초당마을은 크게 안초당과 바깥초당으로 구분한다. 안초당은 초당 안쪽에 솔밭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안초당이라 부르는데 경포호에 가까운 마을이며, 바깥초당은 초당 바깥에 있는 마을로 포남동 쪽이다. 안초당이 바로 경포8경의 하나인 '초당취연(草堂炊煙)'에 해당되는 마을이다. 해가 시루봉[증봉(甑峰)]에 걸려 뉘엿뉘엿 넘어가려 할 때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호수 동남쪽 깊은 솔밭 마을, 곧 안초당에서 평화로이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다. 안초당에 있는 마을길이라 하여 초당안길이라 하는 길이 최상순가옥에서 바깥초당가는 방향으로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