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4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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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普光里 |
영어음역 | Bogwang-ri |
이칭/별칭 | 보현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유정,증보:박석중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명칭 유래]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형성 및 변천]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보현촌, 보광동, 보갱이라 하다가 1916년 무일동, 삼왕동, 무시골을 합해 보광리라 했다. 1955년 9월 1일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보광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무시골, 절골, 보겡이, 삼왕동, 송명동, 백양동 등이 있다. 무시골은 보현사 앞과 보현들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안무시골과 바깥무시골로 나누어진다. 옛날 문수보살이 살던 터가 있어 무시터라고도 하며, 또한 무시를 무쇠 또는 물쇠라 하여 수철동(水鐵洞)이라고도 한다.
절골은 폐교된 보광 초등학교에서 보현사까지의 깊은 계곡으로 보현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보겡이는 보광 초등학교에서 삼왕(三王) 사이에 있는 내 서쪽 마을이다. 삼왕동(三王洞)은 명주군왕릉 앞에 있는 마을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이 죽은 다음 아들 둘이 이곳에 머물러서 ‘삼왕(三王)’이라 했다고 한다. 송명동은 삼왕동에서 내 건너 서쪽에 있는 골로 골 안에 기도원이 있으며, 옛날 이곳에 송명암(誦明庵)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백양동은 보광 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황]
보광리는 강릉 지역 내의 주요 송이버섯 생산지의 하나로 보광 1리와 보광 2리의 2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보광리 일대는 주요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우선 보광 1리 마을 뒤 선자령 낙맥 아늑한 곳에 보현사가 있으며, 여기에는 보물 제191호인 낭원대사오진탑, 보물 제192호인 낭원 대사 오진탑비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보현평에는 가마터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3 강릉 대도호부에 ‘자기소일재부 보현촌’이란 기록이 있는데 이 가마터가 보광 2리에 있는 사기점으로 추정된다.
보광 2리 마을 뒤에는 명주의 옛 왕인 명주군왕릉[강원도 기념물 제12호]이 있다. 명주군왕릉 입구에는 삼왕사와 생육신의 일인인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모신 청간사가 있다. 그 외에도 마을 맨 안쪽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28호인 강릉 대공산성이 있다.
보광리는 전형적인 농·산촌 마을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발달해 있는 지역이며, 최근 보광리에서는 힐링과 농·산촌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또 전망 좋은 곳곳에는 펜션들이 지어져 관갱객들이 내방하는 농촌관광의 명소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