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4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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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通信 |
영어음역 | tongsin |
영어의미역 | communic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한정수 |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사람이나 단체 간에 정보를 효과적으로 교환하는 과정 및 체계.
[개설]
통신은 인사, 안보, 인사 이동, 첩보, 죽음 등의 소식이나 정보 등을 주고받는 과정 및 체계를 말한다. 곧 정보 교환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인류는 그동안 많은 수단을 개발·이용하여 왔다. 예를 들면, 사람이 직접 오가면서 소식을 전하는 인편, 말과 역을 이용하는 역마(驛馬), 길들인 비둘기 등을 이용하는 전서구, 높은 산에서 연기를 피워 알리는 봉수, 배나 연을 띠워 정보를 알리는 것 등이 전근대 사회에서 주로 이용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통신은 과학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욱 신속 정확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교통 수단으로서의 철도와 선박, 항공, 자동차 등의 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인터넷 및 모바일을 통해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상 통신과 DMB까지도 가능하다.
[변천]
강원도 및 강릉의 통신사는 역로의 정비로부터 시작된다. 조선 시대 강원도의 역도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보안도(保安道) 20개 역, 대창도(大昌道) 28개 역, 평릉도(平陵道) 9개 역 등 3개 역로에 속역(屬驛)이 57개였다. 그런데 1445년(세조 원년)에 이르러 효용도가 낮아진 대창도와 보안도를 합하여 대창도라 칭하고 찰방(察訪)을 파견하도록 하였다. 그 후 역로는 점차 정비되어 1462년(세조 8년) 8월에는 은계도(銀溪道)[屬驛 17, 察訪], 보안도[屬驛 30, 察訪], 평릉도[屬驛 15, 驛丞], 상운도(祥雲道)[屬驛 16, 驛丞] 등 4개 역로로 개편되었다. 세조대에 정비된 역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르러 4역도 78역으로 확립된다. 4역도는 조선 후기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속역의 증감과 찰방주재역이 바뀐 곳이 있었을 뿐이다. 이 가운데 강릉대도호부에서 관할하던 역은 대창·안인·진부·구산·횡계·대화·방림·운교·목계·고단·악풍·임계·동덕 등 13개 역이었다. 강릉 대도호부의 역마는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역원조(驛院條)」에 의하면 대마(大馬) 7, 기마(騎馬) 11, 복마(卜馬) 50이고, 역리는 252명, 노는 229명, 비는 239명이었다.
한편 조선 시대에는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기타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요로에 원우(院宇)가 설치되어 있었다. 원은 공공적인 시설로서 전국에 대·중·소로에 설치되어 그 기능을 감당하였는데, 대체로 30리 거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는 강릉대도호부의 원은 홍제원(洪濟院), 제민원(濟民院), 대령원(大嶺院), 독산원(禿山院), 인락원(人樂院), 인부원(人富院), 자인원(慈仁院), 장연원(長淵院), 무응구리원(無應仇里院), 장수원(長壽院), 대제원(大濟院), 송현원(松峴院) 등이었다.
봉수는 변경 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변경의 진영에 알리는 통신 체제로 주로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운영되었다. 조선 전기 강원도의 봉수대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48개 처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강릉 지역은 간선망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봉수대는 주문산(注文山)·사화산(沙火山)·소동산(所同山)·해령산(海靈山)·오근산(吾斤山)·어달산(於達山)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와서는 경흥으로 이어지는 본선에 속한 평강(平康)·회양(淮陽)·철원(鐵原)·금성(金城)의 봉수대만 존속하고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간선망은 모두 폐지된다.
1895년에는 우정 사업이 재기되어 1895년 5월 26일에 농공상부 분과 규정 칙령 127호, 125호로 우체사 관제를 공포하고 우체사 설치를 공고한 후 1895년 6월 1일에 칙령 125호로 강릉 우체사를 제정하였고, 1896년 7월 23일에 칙령 32호로 전보사 관제를 제정할 때 2등사로 강릉 전보사가 공포되었다. 1898년 1월 15일에는 농공상부령 제 24호로 강릉 우편국이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57[성내동 28번지] 현 우체국 청사 부근에 개설되었으며, 1907년 12월 21일에는 평창 우체국과 함께 전신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하였으나 한글 전문은 취급하지 않았다. 1922년 1월 26일부터는 강릉 우편국에서 전화 교환 업무와 탁송 전보 업무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19세기 말 이래 우리나라의 통신권을 장악한 후 한국의 통신 사업을 자국의 자본으로 정비·발전시켜 나갔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말까지 강릉읍에는 우편국이 있었으며, 주문진과 옥계에는 각각 우편소를 두었다. 이외에 우편 취급소와 수입 인지 판매소 19곳, 우편함 23곳, 사서함 12개, 전화 교환 취급소 1개소 등이 있었다. 당시 개인 전화 가입자 수는 93명이었다.
한편, 1938년 9월 1일에는 강릉 무선국이 홍제동에 설치되어 서울과의 교신과 청진~울릉도~부산 간 연안을 운항하는 선박과의 무선 통신을 담당하였으며, 송정 송신소에서 송파 업무를 시작하였다. 1940년부터는 항공 업무도 실시하였으며, 1942년 5월 1일에 원산 무선국이 개국된 후 해안 업무, 고정 업무를 모두 원산으로 이관하고 항공 업무만 취급하다가 해방 후부터는 본래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현황]
강릉시의 주요 통신 시설은 우편, 전기 통신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우편의 경우 강원도 강릉시 성내동에 있는 강릉 우체국이 중심이 되는데, 그 연혁은 1898년으로부터 시작된다. 2011년 우체국은 강릉 우편 집중국과, 강릉 우체국을 비롯하여 6급 관서인 주문진 우체국, 강원 사천 우체국, 강릉 교동 우체국, 경포대 우체국, 강릉 노암동 우체국, 강릉 포남동 우체국이 있으며, 7급 관서로 관동 대학교 우체국과 강릉 원주 대학교 우체국이 있다. 별정 우체국으로 강원 구산 우체국, 연곡 우체국, 구정 우체국, 정동 우체국, 왕산 우체국, 옥계 우체국이 있으며, 우편 취급국으로는 강릉 교리 취급국·강릉 교1동 취급국·강릉 교항 취급국·강릉 동부 우편 취급국·강릉 옥천동 취급국·강릉 입암 취급국이 있다. 우체국에서는 우정 사업의 중심인 우편 서비스 외에도 보험, 예금 등 우체국 금융 서비스도 행하고 있다. 한편 강원도 강릉시 교1동에는 우편 집중국이 있어 영동 지역에서 접수되는 우편물과 전국에서 도착되는 우편물에 대해 우편 서비스를 행하고 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우표류 판매업소는 102개소이다.
[표 1] 강릉 지역 일반 우체국 현황
[표 2] 강릉 지역 별정 우체국 현황
한편, 1990년에 강릉 전신 전화국이 강릉 전화국이 다시 KT 강릉 지사로 바뀐 이래 전기 통신서비스와 관련하여 2007년 9월말 강릉의 전화 시설수는 125,785회선, 전화 가입자수는 95,018명이며, 업무용 가입자 29,026명, 주택용 가입자 64,172명, 사업용 가입자 1,820명이다. 모바일과 인터넷 사용자의 급증으로 공중전화수는 매년 감소추세에 있는데 2007년 말 그 수는 1,205대에 불과하다.
전화 서비스의 분야는 매우 다양한데, 전화 정보 서비스, 부가 가치 전화 서비스, 공중전화, 전용회선, 기업 통신, 국제 전화, 전보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기간 통신 사업자로부터 회선 설비를 임차 받아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그 설비를 타인의 통신에게 제공하는 부가 통신 서비스가 있다.
이러한 통신 정보 서비스를 위한 강릉 지역 통신 기관 및 사업자는 다음과 같다.
(표 3) 강릉 지역 주요 통신 기관 및 사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