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4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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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學徒義勇軍參戰 |
영어의미역 | Entry into War by Gangneung Student Volunteer Army |
이칭/별칭 | 강릉학도의용병참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인용 |
[정의]
한국전쟁 중 학생들이 군대에 편입되어 북한군에 대항해 벌인 전투.
[개설]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편입된 학도의용군들은 계급도 군번도 없이 인천상륙작전, 낙동강 방어선전투, 북진작전, 혜산진 전투, 흥남 철수작전, 중동부 전선 전투, 태백산·설악산·서남지구의 잔비 소탕작전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투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하였다.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국전쟁 발발시 남한의 병력 수와 군장비 등은 북한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다. 강릉 지역도 전쟁 시작 3일 만에 함락되어 90여 일 동안 북한군의 치하에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경과]
최초의 학도의용군은 피난길에 나섰던 서울시내 각 학교의 호국단 간부 200여 명으로 이들은 1950년 6월 29일 수원에서 의용군으로 조직되었다. 강릉 지역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여 활동하거나 다양한 반공활동을 수행하였다.
강릉이 3일 만에 북한군 수중에 들어갔을 때, 반공학생들이 조국수호결사대를 조직하여 북한군 강제입대 및 시민들의 부역저지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라디오를 입수하여 아군의 전황과 인천상륙작전상황 등의 뉴스를 전단으로 제작하여 살포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전쟁 상황을 상기시켰다.
일부 학생들은 국군의 강릉 입성 환영을 위한 태극기를 제작하다가 지역공산당원의 밀고로 체포되었고 그 결과 최우규, 김동훈, 박준열 등의 학생들이 처형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강릉 지역에 있던 강릉농중고교, 강릉상업중고교, 강릉사범학교, 강릉여중고교, 주문진수산고의 많은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
[결과]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한 학생들 중 강릉농중고교 20명, 강릉상업중고교 12명, 강릉사범학교 13명, 강릉여중고교 1명, 주문진수산고 3명 등 총 49명의 학생들이 희생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전쟁 시 30여 만의 학도의용군은 계급도 군번도 없이 싸우다 귀한 생명을 바치기도 하면서 조국 수호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