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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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鄕戰 |
영어음역 | hyangjeon |
영어의미역 | village contest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규대 |
[정의]
강릉 지역 재지 사족들 간의 갈등.
[개설]
향전(鄕戰)은 군현(郡縣)의 재지 사족들 간의 갈등 관계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향전의 양상은 군현의 상황과 재지 사족의 입지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대개는 재지 사족과 문중 간에 군현의 주도권을 염두에 두고 전개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강릉의 향전-하남재시비]
1. 발단
강릉 지역의 향전은 이른바 ‘하남재시비(河南齋是非)’라고 한다. 이 시비는 1684년(숙종 10) 야기되어 1781년(정조 5)까지 약 90여 년 간 지속되었으며, 이 동안 재지 사족과 문중이 양분되어 세력을 이루었고 이들은 각기 중앙의 정치 세력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추세로 전개되었다.
강릉 지역의 심씨 일문은 1684년(숙종 10) 하남재를 건립하였다. 이 무렵 심씨 일문은 현조인 어촌 심언광의 신원을 회복하면서 시호를 주청하여 성사시켰다. 그리고 심언광이 구득하였던 주자 영정을 봉안하는 하남재를 건립하였고 여기에 심언광을 배향하였다. 물론 이러한 모든 과정은 중앙의 노론 세력과의 연계하에 추진될 수 있었다.
시비의 발단은 하남재를 서원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욕을 보이면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하여 강릉 지역의 거성이었던 여타의 문중들이 심씨 일문의 서원 건립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동조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이른바 재지 세력 간 또는 문중 간에 시비가 발단된 것이다. 심씨 일문에서는 일개 문중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역 사회 내적으로는 공론을 모으려 시도하였고, 외적으로는 중앙 사림의 지원을 받고자 시도하였다. 또한 서원 건립을 반대하는 세력에서도 내적으로 여론을 모으면서 외적으로 중앙의 사림 세력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2. 전개
강릉 지역에 양대 세력이 구축되면서 서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점차로 증폭되어 갔다. 심씨 일문은 주부자-우암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정립하여 서원 건립의 당위성을 확보하려 시도하였고, 이에 대하여 반대 세력은 영정의 진위를 문제 삼아 그 당위성을 무산시키려 시도하였다.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서원 건립이 문제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 지역의 주도적 입지의 확보라는 문제가 뿌리 깊게 깔려 있었다.
비록 일부 세력의 노력으로 중재 활동이 없지 않았지만 성사시키지 못하였고, 중앙의 정치 세력과 연계됨으로써 관찰사와 수령도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러한 갈등 구도에서 지역 내에서 중재는 무망한 일이었고 양대 세력은 중앙의 사림과 정치 세력에 의존하는 형국으로 갈등은 보다 발전되어 갔다. 결국 정조 초년에 정국이 전환되고 서원 건립의 당위성이 무산되면서 갈등은 종국을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