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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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師直 |
영어음역 | Han Saj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 한배후(韓配厚)의 아들로, 한배연(韓配淵)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유익기(兪益基)의 딸이다.
[생애]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벼슬길로 나아가 1740년(영조 16)에 정선군수를 거쳐 정랑에 올랐다. 175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다. 1756년(영종 32)에 강릉부사가 되었는데, 그때의 치적을 인정받아 동부승지가 되었다. 1763년 대사간에 올랐으나 경연관으로서 경연에 불참하였다 하여 원주목(原州牧)에 유배되었다. 1764년 유배에서 풀려나 대사간이 되었고, 다시 대사헌을 지냈다. 이어 한성판윤을 거쳐 80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지중추부사를 역임하는 등 영조로부터 우로(優老)의 은전을 입었다.
[활동사항]
강릉부사로 재직 중이던 1756년(영종 32)에 관동 지방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 녹봉에서 구휼미를 내는 등 정성을 다하여 진휼에 힘써 수천 명의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였다. 또 선비를 우대하고 재직하는 6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백성을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공간(恭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