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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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集斗 |
영어음역 | Yi Jipd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으로,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철명(趙哲命)의 딸이다.
[생애]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쳤다. 1790년에 강릉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이어 대사간·대사헌과 외직으로 안동부사를 거쳤다. 1798년(정조 22)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변방의 야인을 잘 다스렸으며 1800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순조가 즉위하자 한성판윤, 공조·예조판서가 되고, 1810년 동지사(冬至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70세가 넘어 판돈녕부사로 관직에서 물러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활동사항]
1790년(정조 14)에 강릉현감이 되었을 때 해폐(海弊)·군폐(軍弊)·세폐(稅弊)·삼폐(蔘弊) 등 네 가지 읍폐(邑弊)를 상소하여 그 시정을 건의하였다. 연못을 파서 수리를 관리하였으며, 부평정(浮萍亭)을 고쳐지었다. 향교 석전제(釋奠祭)에 제수를 줄인 사건으로 강릉의 유생들이 감사에게 장계를 올리려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장계 서두의 내용이 불순하다 하여 이를 올려 보내지 않은 죄로 1791년(정조 15) 청원에 의하여 파직되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