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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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憲章 |
영어음역 | Yu Heonjang |
이칭/별칭 | 풍류태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사간원 정언을 지낸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생애]
1681년(숙종 7)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690년 사헌부지평에 올랐고, 같은 해에 부제학 이담명(李聃命)에 의하여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이 올랐다. 이듬해에 홍문관교리가 되었고, 이후 수찬·교리·장령·부교리 등을 거쳐 참의에 이르렀다.
[활동사항]
1707년(숙종 32) 강릉에 부임하여 기근을 구호하였고, 양전(量田)하였다. 1712년 기근 때에는 곡식 400석을 마련하여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효자 정문(旌門)이 내려진 집안에 자손이 없자 관에서 주선하여 정려(旌閭)를 세워 주기도 하였다. 6년 동안 재직하면서 오로지 한마음으로 주민을 돌보았으며, 가끔 시와 술을 가까이 하여 풍류태수(風流太守)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