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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619
한자 五峯書院古蹟
영어의미역 Relics of Obong Confucian Academy
이칭/별칭 『오봉서원 고적단』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 강릉대학교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정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지
관련인물 함헌
간행자 최동길
간행연도/일시 1929년연표보기
권수 1권
책수 1책
사용활자 필사
가로 21㎝
세로 32㎝
장정법 5철
지질 한지
소장처 장정룡
소장처 주소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7[지변동 123] 강릉원주대학교 국문과

[정의]

1556년 강릉에 세워진 오봉서원(五峯書院)의 비문과 현판시, 중수기 등을 모아서 편찬한 책자.

[개설]

1929년 기사년 12월 장현에 사는 최동길(崔東吉)이 오봉서원 고적 책자의 서언(序言)을 쓰면서 옛 고적을 잊지 않기 위해 책자를 낸다고 하였다. 오봉서원은 1556년 이천부사로 있던 함헌(咸軒)[1508~?]이 병으로 물러나 고향에서 머무를 때 최수장, 최운우 등이 강릉 구산에 서원을 지을 것을 청하자 최덕령, 진사 권대균 등의 동의를 얻고 감사 윤인서와 강릉부사 홍춘년의 도움으로 짓게 되었다.

오봉서원에는 공자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진영은 함헌이 명나라 서장관으로 갔을 때 오도자(吳道子)의 수화(繡花)인 공자 진영을 가져온 것이다. 당시의 건물은 성묘 3칸, 전랑과 신문이 5칸, 좌우제랑이 6칸 강당이 10칸, 서책고가 2칸 대문이 2칸이었다. 오봉서원은 사액서원은 아니나 공자의 진영을 봉안한 강원도 유일의 서원이므로 1618년에 위전(位田) 3결(結)과 소속인 20명을 하사받았다. 1782년에는 주자의 영정을 봉안하고 1831년에는 우암 송시열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의 『서원십영(書院十詠)』에도 오봉서원이 들어 있는데, 서원을 설립하는 데 최운우가 나섰고 퇴계 이황의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68년(고종5) 전국의 사액서원을 제외한 서원철폐령으로 오봉서원도 철폐되어 공자의 영정은 강릉향교로 옮겨졌다. 1914년 집성사를 중건하고 1916년 묘정비를 세웠으며 1928년 칠봉사를 중건하고 강당도 세웠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유형문화재 45호로 지정되었다.

[편찬/발간경위]

오봉서원의 고적을 후손들에게 남겨주기 위해서 최동길 등 향인들이 힘을 모았으며, 이 책자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인 "찬성록(贊成錄)"에는 두산의 최명수, 장현의 최동길, 모전의 이시응, 학산의 조규설, 청량의 김동환, 산황의 조삼환, 망상의 한일동 등 인근 유림들 388명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구성]

강당 현판의 시는 퇴계 이황(李滉)의 시와 명재 윤증(尹拯)[1629~1711]의 시가 실렸고, 강당 중수기 제1회는 최응천이 썼다. 1806년에 이만수가 짓고 조윤대가 글을 쓴 오봉서원 기적비의 내용 전문이 실려 있으며 끝에 "찬성록"이 들어 있다.

[내용]

『오봉서원 고적』에는 오봉서원과 관련된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오봉서원은 문선왕과 우암 송시열, 주자 등 세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공자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책자는 칠봉사와 강당을 새로 짓고 서원과 관련된 고적 내용을 펴낸 것으로 강당 현판시, 강당 중수기, 기적비의 내용을 필사하여 출판하였다.

[의의와 평가]

오봉서원은 서원, 집성사, 칠봉사, 묘정비, 기적비 등의 고적이 있으며 이 책에는 강당 현판시, 기적비 내용을 싣고 있어 서원설립 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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