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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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越辛氏 |
영어음역 | Yeongwol Sinssi |
영어의미역 | Yeongwol S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임호민 |
세거지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강원도 강릉시 입암동|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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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종 대|조선 선조 대 |
성씨시조 | 신경(辛鏡) |
입향시조 | 신주(辛柱)|신경철(辛慶鐵)|신경원(辛慶遠)|신휘(辛暉) |
[정의]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연원]
신씨는 본래 중국에서 들어 온 성씨로 신시랑(辛侍郞)과 엄시랑(嚴侍郞)이 신라 경덕왕 때 파락사(波樂使)로 신라에 왔다가 당에서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돌아가지 못하고 영월에 들어와 정착한 데서 기원하였다. 신시랑의 후손인 영월신씨의 시조는 신경(辛鏡)으로 1138년(인종 16) 등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다.
[입향경위]
고성군수를 지낸 신주(辛柱)는 1513년에 종질(從姪)인 영천군(寧川君) 신윤무(辛允武)와 영성군(寧城君) 신윤문(辛允文) 형제가 박영문(朴永文) 원옥사건(寃獄事件)으로 화를 입게 되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 강릉으로 내려 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정착하였다.
신경철(辛慶鐵)과 신경원(辛慶遠)은 임진왜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종형(從兄)인 신경진(辛慶晋)이 강릉부사에 부임할 때 따라와 정착하였다.
신휘(辛暉)는 임진왜란을 피해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조선시대에 임계면은 강릉대도호부 관할임]에 피난하였다가 1675년 102살까지 살았다. 수직으로 형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세거현황]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강릉시 입암동, 강동면 일대가 세거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