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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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慶綠 |
영어음역 | An Gyeongrok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류동희 |
[정의]
감리교회 담임목사로 강원도 강릉 지역의 3·1만세운동 핵심 주동인물.
[학력]
한학(漢學)을 4~5년간 수학하고 숭실학교[4년]를 다녔으며, 감리교 신학교를 1회로 졸업(1911)하였다.
[경력]
1911년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평양에서 전도사로 목회하였고, 1913년부터 원주 지방 순행 전도사로 영월에서 조상옥, 신성희와 목회하였다. 1914년에는 강릉, 삼척을 담임 시무하였으며 1915년 연회에서 강릉중앙감리교회로 파송되어 부임하였다. 1916년에 연회에서 집사목사와 1918년에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24년 진남포 신흥리교회, 1927년 만주 영고탑교회, 1928년 황해도 수안교회에 부임하였다. 수안교회에 1929년까지 재임하는 동안에는 극심한 생활난으로 교회를 사면하고 교회청년들과 농장을 만들어 자립하며 부흥회를 다니기도 했다. 1940년 감리교신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장남 안예겸(安禮謙)이 갑자기 사망하자 정신적 충격을 받아 한때 방황했으나 빌링스(B. W. Billings, 邊永瑞)의 후원으로 서울 홍제동에 농지를 구입하여 농장을 경영하는 한편 홍제동 교회 일을 도왔다.
[활동사항]
영동 지역에 기독교 전파와 강릉 지역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철원애국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등 적극적으로 애국적인 민족계몽과 교육활동을 하였다. 또한 안경록은 일제에 의해 조작된 105인 사건에 연루되었다. 당시 평안남도 평양 강흥면의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던 30세의 안경록은 정익로, 윤성운, 김동원 등과 함께 양기탁, 윤치호, 임치정 등의 지휘로 데라우치[寺內] 총독을 살해하기 위해 권총을 휴대하고 평양 정거장에 나갔다. 그러나 미수에 그치고, 일심판결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언도받았다. 1913년 10월 29일 복심법원(覆審法院)에서 윤치호, 양기탁 등 주모자 6명만 5~6년의 형을 언도받고 안경록 목사 등 99명은 무죄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