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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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世四孝之閭 |
영어음역 | Samse Sahyo Jiryeo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Kim Dam's Family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안땔길 26[노암동 657-4번지]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호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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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608년(선조 41) |
관련인물 | 김담|김경황|김경시|김한 |
높이 | 김담비 82.5㎝|김경황비 83㎝|김경시비 82.5㎝|김한비 82㎝ |
비좌너비 | 김담비 67㎝|김경황비 45㎝|김경시비 45㎝|김한비 58㎝ |
비좌두께 | 40㎝|39㎝|39㎝|34㎝ |
비좌높이 | 22㎝|20.5㎝|20㎝|20㎝ |
비좌재질 | 화강석 |
너비 | 김담비 33.5㎝|김경황비 31.5㎝|김경시비 30.5㎝|김한비 32㎝ |
비신두께 | 8㎝|8.5㎝|8㎝|8㎝ |
높이 | 82.5㎝|83㎝|82.5㎝|82㎝ |
비신재질 | 화강석|화강석|화강석|오석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안땔길 26[노암동 657-4번지] |
소유자 | 강릉김씨 종친회 |
[정의]
강릉시 노암동에 있는 김담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삼대에 걸친 4명의 정려비.
[개설]
김담(金譚)을 비롯하여 아들인 김경황(金景滉)과 김경시(金景時) 그리고 김경황의 아들인 김한(金垾)의 정려를 말한다.
[명칭유래]
3대 즉 김담과 그의 아들, 그리고 손자에 걸쳐 4명의 효자가 나온 데에 기인한다.
[형태]
받침돌 위에 높이 82~83㎝, 너비 30.5~33.5 ㎝, 두께가 8~8.5 정도 되는 네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김경황과 김경시 형제의 받침돌은 붙어 있다.
[금석문]
효자각 안에는 네 개의 비석이 있는데 그 비문은 각기 다음과 같다.
(1) 전면비명 : 효자첨지중추부사김공휘담지려(孝子僉知中樞府事金公諱譚之閭)
(2) 전면비명 : 효자첨지중추부사김공휘경황지려(孝子僉知中樞府事金公諱景滉之閭)
(3) 전면비명 : 효자교수김공휘경시지려(孝子敎授金公諱景時之閭)
(4) 전면비명 : 효자계공랑진도훈도김공휘한지려(孝子啓功郞珍島訓導金公諱垾之閭)
뒷면 비문은 각기 문자 없이 평평하다.
효자인 김담은 향현(鄕賢) 열두 명 중의 한 사람으로 부친상을 당하여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아침저녁으로 상식으로 올린 술잔이 스스로 말랐으며, 묘역에다 석물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돌을 쪼개기가 어려워 그 돌을 붙들고 슬프게 울자 돌이 먹줄을 따라 갈라졌다. 고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였다고 하면서 탄복하였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시를 지어 그의 지극한 효성을 기렸다.
효자인 김경황은 김담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뛰어났다. 철이 들자 연이어 부모의 상을 당하였는데 삼년 동안 죽만 먹고 묘막(墓幕)에서 살면서 하루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눈비가 아무리 와도 아침저녁의 묘곡(墓哭)을 거른 적이 없었다. 선조 때에 효자정려를 받았다.
효자 김경시는 김담의 아들로 김경황의 동생이다. 부모상을 당하여 형을 따라 형과 꼭같이 하니 그 효성으로 형과 함께 효성을 받았다. 1608년(선조 41) 조작(曺綽)이 강릉부사로 부임하자 먼저 효자와 충신을 찾아내어 김경시로 하여금 이 고장의 옛 자취를 일일이 캐어 향현록(鄕賢錄)을 저술하게 했다.
효자인 김한은 김담의 손자이고 김경황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효성을 닮아 그의 효성도 남달리 극진하였다. 아버지가 위독할 때는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회생하게 하였고 어머니가 병환에 있을 때는 대변의 달고 씀을 맛보며 정성으로 간호했다. 부모상 때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던 것과 같이 죽만 먹으며 삼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부사인 이후(李煦)가 대를 이어 효성이 지극한 김한을 주천(奏薦)하여 정려를 받았다.
[현황]
현재 효자각인 삼세사효지려(三世四孝之閭)의 현판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썼으며 봉래(蓬萊) 양사언(揚士彦)이 지은 '서김효자행실(序金孝子行實)'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음각 발문현액(跋文懸額)인 '서강릉김씨사효행록후(書江陵金氏四孝行錄後)'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