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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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地區戰績碑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Inscription of in Gangneung |
영어음역 | Gangneung Jigu Jeonjeok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Military Achievement in Gangneung |
이칭/별칭 | 공군전적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45-4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흥술 |
성격 | 전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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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상징탑 |
건립시기/연도 | 1981년 12월 30일 |
높이 | 11.1m |
비신재질 | 화강석 |
비문각자 | 백문기[조각]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45-49 |
전화 | 033-640-4469|033-1330 |
소유자 | 강릉시 |
[정의]
한국전쟁 때 강릉 공군기지의 전적과 전공을 기념하여 세운 전적비(戰績碑).
[개설]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강릉에 있는 공군기지는 대한민국 공군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곳이다. 그것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 공군이 처음으로 단독 출격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공군기지이기 때문이다.
강릉 공군기지에서 활약한 인물로 김영환[1921~1954], 유치곤[1927~1965] 장군 등이 있다. 김영환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T-6 훈련기를 타고 강릉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적군 전차와 차량에 폭탄과 수류탄 공격을 감행, 큰 전과를 올렸다. 또한 적군이 은거한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해 자칫 인멸될 위기에 처했던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존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유치곤 장군은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성공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강릉 공군기지의 F-51기, 즉 무스탕기의 조종사로서 한국 공군사상 최다 출격 기록을 남겼다.
[건립경위]
한국전쟁 당시 한국 공군이 단독으로 처녀 출전한 전적을 기념하고 또 108명의 조종사가 7,851회 출격하여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과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11명의 젊은 조종사들의 넋을 추모하고 나라 위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강릉시에서 건립하였다.
[위치]
강릉시 안현동의 경포대해수욕장 입구에 위치하던 것을 2008년 7월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위치한 강릉통일공원으로 이전하였다.
[형태]
전적비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부분에는 세 명의 공군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서 있고 뒷부분에는 전투기 몸체 같이 생긴 11.1m의 중심부가 있으며 양 옆에는 날개 같이 생긴 부분이 있다.
[금석문]
앞부분에는 ‘강릉지구 전적비’라는 제목과 함께 내용이 적혀 있고 바로 뒷면에 개요가 적혀 있으며, 전투기 몸체 같은 중심부 오른쪽에는 참전 약사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 약사에는 ‘1951년 10월 11일 우리 공군에 의한 단독 출격 작전은 강릉 공군기지에서 인제 동북방 ‘당장곡’ 공격을 시발로 감행하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UN 공군과 보조를 맞추어 동부전선의 공산군 보급로 차단을 수행하였다. 약 2년 가까이 우리 공군은 이곳 강릉 공군기지에서 단독 출격 작전을 개시한 이래 휴전이 될 때까지 108명의 조종사가 7,851회를 출격하여 적의 후방 차단 작전과 지상군 근접 지원 작전을 감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11명의 보라매가 적의 상공에서 애기(愛機)와 함께 산화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현황]
2008년 7월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위치한 강릉통일공원으로 이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강릉지구 전적비는 한국 공군이 출격하여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전쟁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에 평화를 안겨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기념 조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