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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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山溪里金玉契防役事蹟碑-種善碑 |
영어음역 | Gangneung sangye-ri Geumokgye Bangyeok Sajeokbi mit Jongseonbi |
영어의미역 | Geumgokgye and Jongseon Monuments of Sangye-ri in Gangneung |
이칭/별칭 | 산계리 금옥계 방역 사적비 및 종선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2리 787번지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흥술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3월 11일 - 강릉산계리금옥계방역사적비및종선비,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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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강릉산계리금옥계방역사적비및종선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건립시기/연도 | 1796년(정조 20) |
건립시기/연도 | 1828년(순조 28) - 강릉:강릉산계리금옥계방역사적비및종선비 중건 |
건립시기/연도 | 2004년 - 강릉:강릉산계리금옥계방역사적비및종선비 재건 |
성격 | 사적비 |
양식 | 비석과 비각 |
관련인물 | 고진창(高鎭昌)|우광택(禹光澤)|전삼박(全三泊) |
높이 | 금옥계 방역사적비 50㎝|종선비 222㎝ |
비두너비 | 98.5㎝ |
비두두께 | 56㎝ |
비두높이 | 38㎝ |
비두재질 | 화강석 |
비좌너비 | 118㎝ |
비좌두께 | 90㎝ |
비좌높이 | 11㎝ |
비좌재질 | 화강석 |
너비 | 50㎝|60.5㎝ |
비신두께 | 10㎝|15.5㎝ |
높이 | 108.5㎝|173㎝ |
비신재질 | 오석(烏石) |
비문찬자 | 이야순(李野淳) |
비문서자 | 이야순(李野淳)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2리 787번지 산계천 북측 도로변 |
소유자 | 금옥계중(金玉契中) |
문화재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
[정의]
조선 후기에 선행을 펼쳐 마을을 구한 산계리 선각자들의 사적을 기록한 사적비.
[명칭유래]
1780년을 전후하여 산계리에는 기존의 전세(田稅)에 산삼 공납이 추가되었고 설상가상 심한 흉작으로 지역민이 마을을 떠나는 유리(流離) 현상이 심하게 되자, 고진창(高鎭昌), 우광택(禹光澤), 전삼박(全三泊) 등 14명이 상계(上啓)하여 관가로부터 경공(京貢)의 산삼을 감량 받았다. 그리고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일차로 50양씩 모금하였고 다시 100양씩 모금한 후에 금옥계를 조직하여 공전을 구입하고 그것을 운영하여 얻어지는 수입으로 동민들의 세금과 공납을 대납(代納)하였다. 이리하여 주민들이 ‘선행(善行)을 널리 펼쳤다.’는 의미의 종선비를 세운 것이다.
[건립경위]
금옥계 계원들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모범으로 삼고자 산계리 마을 주민들이 1796년(정조 20)에 건립하였다.
[변천]
1828년(순조 28)에 이르러 비바람으로 비석이 마모되어 새롭게 비석(종선비)를 세우고 종선각이라는 비각을 함께 건립하였다. 2002년 태풍 루사로 모두 쓸려 나갔으며, 2004년에 다시 종선각과 종선비를 새로 건립하였다. ‘종선각’이라고 쓴 큰 안내석과 안내판도 앞에 서 있다.
[형태]
팔작지붕의 종선각 안에 있는 종선비(種善碑)는 받침돌 위에 높이 173㎝, 너비 60.5㎝, 두께 15.5㎝의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산계리금옥계방역사적비(山溪里金玉契防役事蹟碑)'는 받침돌과 머릿돌 없이 종선비 뒤에 새로 새겨서 임시로 세워 두었는데, 비석의 높이는 108㎝, 너비 50㎝, 두께 10㎝이다.
[현황]
2000년 3월 11일에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