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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159
한자 江陵朴氏
영어음역 Gangneung Parkssi
영어의미역 Gangneung Par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임호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교동|박월동|사천면 미노리|사천면 판교리|강동면 시동
집성촌 강동면 하시동리|사천면 미노리|사천면 판교리
입향시기/연도 1200년대
성씨시조 박혁거세
입향시조 박순

[정의]

신라왕 박혁거세(朴爀居世)의 후손인 박순(朴純)이 1200년대에 강릉에 정착한 이후 누대에 걸쳐 세거한 박씨.

[개설]

박씨는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본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중 박혁거세의 4세손 파사왕의 후손인 박순이 1200년대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를 이어 강릉 지역에 살면서 대성(大姓)을 이루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토성 중에 한 성씨로 등재되었다.

[연원]

박씨 성의 연원은 박혁거세가 박에서 나왔다는 출생설화와 관련이 있다. 강릉박씨의 낙향시조 박순은 박혁거세의 4세손인 파사왕(婆裟王)의 후손이다. 강릉에 낙향한 박순은 1150년(고려 의종 4)에 출생하고 1174년(명종 4)에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를 거쳐 한림학사, 중추원사를 지냈다. 1187년(명종 17)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있으면서 장군 석린(石磷)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한 공로로 정국공신(定國功臣)에 책봉되었다. 1198년(신종 원년) 특별히 정당문학(政堂文學)·검교태부(檢校太傅)에 임명되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이후 박순은 강릉에 낙향하여 정주하였다.

[입향경위]

박순이 강릉에 정착한 연유는 신라하대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이 강릉으로 낙향할 때 함께 온 박린(朴麟)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즉 박린이 강릉에 일시적으로 정착하였다는 연유로 박순이 노년에 강릉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세거현황]

박순 이후 후손들이 번창하여 강릉시 교동, 박월동, 사천면 미노리판교리 일대, 강동면 시동 등지에 세거하였다. 1920년대 후반 조사보고 된 『강릉생활상태조사보고』에 의하면 강동면 하시동리 호수 30여 호에 인구 100여 명, 강동면 운산리 호수 30여 호에 인구 150여 명, 사천면 미노리 호수 40여 호에 인구 200여 명, 사천면 판교리 호수 30여 호에 인구 150여 명, 사천면 덕실리 호수 30여 호에 인구 100여 명 등이었다.

[집성촌 현황]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 사천면 미노리판교리 지역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8.06 오류 수정 오 : ...박혁거세의 4세손 사파왕의 후손인 … 정 : ...박혁거세의 4세손 파사왕의 후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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