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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세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0103
한자 江陵金氏世稿
영어의미역 A Record of the Kim Family in Gangneu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대길

[정의]

조선시대 강릉김씨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보를 정리하여 간행한 족보.

[개설]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은 크게 족도(族圖)·대동보(大同譜)·파보(派譜)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반 족보처럼 정간(井間)을 지어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계보만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가계를 기록한 것이다. 대동보가 전국적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파보는 향촌사회에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고 사족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편찬/발간경위]

강릉김씨의 족도는 외손이 강릉부사로 부임하면서 강릉에서 작성되어 강릉부에 보관하였다. 강릉김씨 대동보는 강릉김씨 가운데 조선중기 이후 가장 번창하였던 벌열(閥閱)가문인 이른바 백동파(柏洞派)에 의해 서울에서 간행되었다. 반면 강릉김씨 파보는 대동보가 서울에서 간행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강릉을 비롯한 지방에서 발간되었다.

[내용]

강릉김씨 대동보 가운데 1565년에 간행된 『을축보(乙丑譜)』는 조선전기 족보의 또 다른 유형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는 친손, 외손을 동등하게 기록한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나 『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와는 달리 철저하게 부계중심으로 족보를 작성하고 있다. 그리고 서얼을 기재하지 않음으로써 적서를 구분하여 명분을 바로 잡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항렬자(行列字)의 사용과 관련하여 강릉김씨의 경우 조선전기에는 형제간에만 사용하였고, 조선중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다.

강릉김씨는 족보를 통해 가문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신라 왕족의 후손임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가계내에서 배출한 현관(顯官)의 수를 늘리기 위해 친손뿐만 아니라 외손까지도 소주(小註)로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작성된 강릉김씨 족보는 다른 성관의 족보에 비해 내용이 충실하고 계보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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