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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877
한자 靈巖邑敎會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역로 9-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승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영암읍 교회 설립
현 소재지 영암읍 교회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 78-1지도보기
성격 장로교회
설립자 맹현리 선교사
전화 061-473-1800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개설]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위치한 영암읍 교회는 영암군 최초의 교회 중 하나로, 교단은 한국 기독교 장로회이다. 목포 선교부 소속의 맹현리 선교사가 설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변천]

영암군의 장자 교회인 영암읍 교회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한 초가를 임대하여 설립하였다. 교회 설립 초기에는 목포 선교부에서 선교사를 파견하여 교리를 전하였다. 1920년 점차 늘어나는 교인들과 목포 선교부의 후원으로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 127번지에 교회당을 지었다. 1923년 신학교를 졸업한 김세열 전도사가 부임하여 교회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1940년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당이 전소되었으며, 박병근 전도사와 김주철 교인이 투옥되어 2년 후 석방되었다. 박병근 전도사는 옥고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영암읍 교회 교인들은 마땅히 예배드릴 장소를 구하지 못하여 세 차례나 옮겨 다니며 예배를 행했다.

그러다 1950년 교인들의 뜻을 모아 교회를 신축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10월 영암군에 당도한 인민군은 공사 중이던 교회를 주둔지로 사용하였다. 인민군은 추수기에 피난가지 못한 교인 24명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였다. 회부된 교인들은 김인봉 전도사, 김동흠 장로, 박인재 안수 집사를 비롯하여 집사 6명과 성도 15명 등 25여 명으로, 이들은 인민군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영암읍 교회에서는 이를 기념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1953년 함태영 부통령의 친필을 받아 교회 한편에 순교비를 세우고 순교자 명단을 순교비에 새겨놓았다.

[현황]

영암군 영암읍 교회의 주요 예배는 다음과 같다. 일요일 낮 예배는 오전 11시, 일요일 저녁 예배는 오후 2시, 수요 예배는 오후 7시 30분, 매일 새벽 기도회 오전 5시, 일요일 학생 예배는 오전 9시, 청년 대학부 예배는 토요일 저녁 7시 30분에 행하고 있다. 등록 신도 수는 500여 명으로 평균 예배 참여 교인은 300여 명에 이른다.

이밖에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 등 기독교의 주요 절기에 따라 기념 예배와 함께 특별 프로그램을 병행하여 진행하고 있다. 교회의 내부 조직으로는 남전도회, 여전도회, 주일 학교 학생회, 청년 대학부 등이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서 지역 사회의 모범이 되는 교회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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