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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랑과 고죽 최경창의 애틋한 사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829
한자 洪娘-孤竹崔慶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집필자 정성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홍랑과 고죽 최경창의 애틋한 사랑」, 『고죽집』에 수록
관련 지명 「홍랑과 고죽 최경창의 애틋한 사랑」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성격 민담|절의담|가족담
주요 등장 인물 최경창|홍랑
모티프 유형 남녀 간의 사랑|여인의 절개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내려오는 최경창홍랑의 사랑 이야기.

[개설]

「홍랑과 고죽 최경창의 애틋한 사랑」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최경창과 기생 홍랑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최경창은 북해평사로 함경도 경성에 부임하였을 때 기생 홍랑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홍랑최경창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는 등 뛰어난 절개를 보여 주었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고죽집』에 수록된 내용을 참고하였다.

[내용]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은 조선 전기의 시인이다. 최경창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그림, 악기 연주, 활쏘기 등 재주가 많았다. 한 예로 을묘왜변 때는 배를 타고 피난을 가다 왜적에게 포위가 되었는데, 최경창이 구슬픈 퉁소 소리로 왜적들을 감동시켜 물러가게 하였다.

1568년 과거에 합격한 최경창은 5년 후인 1573년에 북해평사로 함경도 경성(鏡城)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최경창의 나이가 34세였다. 최경창은 경성에서 문학적 교양과 감수성을 지니고 재색까지 겸비한 기생 홍랑(洪娘)을 만나 깊이 사랑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 최경창이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둘은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양으로 돌아온 최경창이 병으로 몸져눕자 홍랑은 국법까지 어기고 한양까지 병문안을 온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결국 최경창은 사헌부 탄핵을 받고 관직에서 파면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45세 나이에 객지에서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홍랑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다율리에 위치한 해주 최씨의 선산으로 달려가 최경창의 묘 옆에 움막을 지었다. 그리고 스스로 얼굴을 훼손시킨 후 씻지도 꾸미지도 않고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 이처럼 절개를 지킨 홍랑은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창의 작품을 손수 안전한 곳에 옮겨서 후세에 남겼다. 결국 홍랑의 절개에 감동한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이 세상을 떠나자 문중 선산에 홍랑을 묻어 주었다.

[모티프 분석]

「홍랑과 고죽 최경창의 애틋한 사랑」최경창이 재주 많고 교양과 재색까지 겸비한 홍랑을 만나 사랑을 하는 이야기로 ‘남녀의 애정’과 ‘여인의 절개’를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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