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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리 광암 미륵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614
한자 鶴溪里廣岩彌勒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문화유산/무형 유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미륵당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신당/신체 미륵당|미륵불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 제사.

[개설]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마을의 동답(洞畓)에서 얻어진 수익으로 제물을 장만하고 마을을 대표하는 제관들이 참여하여 마을에 있는 미륵당에서 미륵신에게 당산제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미륵과 미륵제의 유래에 대한 설은 두 개가 있다. 우선 ‘정고자 유래설’에 의하면 미륵제는 과거 이 마을에 살았던 ‘정고자’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고자는 고자(鼓子)여서 후손이 없이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미륵이 나타나자 돌을 구해 미륵불을 조각하고, 이 미륵불을 벗 삼아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지금도 미륵제를 지낼 때 미륵의 제상 옆에 정고자 상(床)을 차려서 마을의 안위와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다음으로 가학산 줄기에 있는 청룡골과 관련해서 미륵을 설명하기도 한다. 2013년 현재 마을 동장인 현영수 씨의 증언에 따르면, 청룡골에는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 삼아 놀았던 넓은 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 터에 큰 절이 있었는데, 절에 빈대들이 들끓어 중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 폐사(廢寺)가 되었다. 실제로 청룡골에서는 동자 석불의 머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와 석불의 머리 등을 미루어 광암 마을 사람들은 청룡골 절과 마을에 세워진 미륵을 연관 지어 생각하기도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 미륵제의 신체(神體)인 미륵은 미륵당에 모셔져 있다. 자연석의 앞면에 양각을 한 석불 입상으로, 높이 400㎝, 하단 너비 180㎝, 두께 60㎝이다. 미륵은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마을 입구에 있다. 옛날에는 미륵 주변에 초가집 제각을 지어서 보호했는데, 1960년대에 기와집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절차]

연말에 개최하는 마을 총회에서 미륵제를 준비하기 위한 논의를 한다. 마을 총회에서는 음식을 장만할 유사와 제를 올릴 제관을 선정하고, 제관의 분장(分掌)은 미륵제 당일에 한다.

예전에는 ‘정고자 땅’이라고 부르던 동답(洞畓)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제사 비용을 썼는데, 관리 소홀과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정고자 땅’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의논해 2013년 현재 1800평[약 5,950㎡] 규모의 동답(洞畓)을 마련해 이장이 경작한다. 이장 수고비를 제외하고 1년에 약 100만 원의 동비가 마련되고, 제사 비용은 10만 원 정도 사용한다.

과거에는 유사와 제관이 함께 장을 봤는데 지금은 유사 혼자 오일장인 독천장에 가서 제물을 마련한다. 날짜가 맞지 않으면 가장 가깝게 열리는 장을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도라지·고사리·상추·시금치 등의 나물류와 배·사과·밤·곶감 등의 과일류를 구입하며, 육류와 어류 등 비린 것은 제외한다. 이와 관련해서 유사도 비린 것이나 개고기, 육류를 먹으면 안 된다. 또한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하고, 부부 간의 잠자리도 금했는데 현재는 금기가 많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상갓집이나 산기(産期)가 있는 집의 출입은 강하게 금기시하고 있다. 제물은 유사 집에서 만들어 미륵제 당일에 마을 회관으로 옮긴다. 예전에는 말샘이라고 불리던 공동 우물의 물로 제물을 마련했고, 유사도 우물물로 목욕했지만 현재 말샘은 메운 상태이다.

미륵은 마을 공동체의 수호신으로 마을 사람들은 미륵 주변을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상여가 나갈 때도 미륵 앞을 지나가서는 안 되고, 뒤로 돌아서 갔다고 한다. 미륵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미륵 주변뿐만 아니라 마을 공간도 정화해야 한다. 유사의 집과 중요한 곳에 왼새끼로 꼰 금줄을 치고, 황토를 퍼 와 곳곳에 뿌렸다. 광암 마을의 경우 2013년 현재 현희선씨가 살고 있는 집의 뒷동산에 있는 황토를 퍼 와 뿌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금줄도 치지 않고, 황토도 뿌리지 않는다.

미륵제 준비 기간 동안 마을에 급작스러운 산고(産故)나 상(喪)이 발생하면 음력 2월 1일로 제사 날짜를 옮긴다. 옮긴 기간에 마을에 또 변고가 생기면 그해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흔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미륵제와 산일(産日)이 겹칠 것 같으면, 당사자는 마을을 떠나서 친정이나 다른 곳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상이나 출산과 관련된 미륵제에 대한 금기는 아직도 마을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음력 1월 14일 밤 11시 경에 미륵제를 지내는데, 유사·초헌관·아헌관·종헌관·축관·집사·홀기 등이 제사를 집행한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있는 제물을 미륵각으로 옮겨 진설(陳設)을 한다. 진설이 끝나면 참신(參神)을 하고, 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 순으로 진행한다. 정고자 대감상에 담배를 올리고 전원 재배(再拜)를 한다. 소지(燒紙)를 올리고, 종배(終拜) 후 사신(辭神)을 하고 마을 회관으로 이동해 음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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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

유 세차 병술 일월 술오삭 십오일 임신 유학 현영수 학계리 미륵지신 동민정성 제◯ 향 동민 성세화평 질병방 건승 운수대통 풍년농사 차축 영납 ◯◯ 백배처축신 감리소 상 향(維 歲次 丙戌一月 戌午朔十五日 壬申 幼學 玄永洙 鶴溪里 彌勒之神 洞民精誠 祭◯享 洞民 盛世和平 疾病防 健勝 運數大通 豊年農事 此祝 迎納 ◯◯ 百拜處祝神 鑑裏素 尚饗)

[부대 행사]

미륵제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음복을 하면서 여담을 나눈다. 미륵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미륵제를 준비하면서 나타났던 문제 및 전승에 대한 고민도 나눈다.

[현황]

광암 마을 사람들은 미륵을 영험한 존재로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8·15 해방 후 인근 마을에서 호열자가 발생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광암 마을 사람들은 피해 없이 넘어갔다. 이를 마을 사람들은 미륵의 영험함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미륵이 있는 주변 공간을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미륵 주변에 있는 나무는 물론 잡초라고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미륵 옆에 있는 소나무의 가지를 꺾어 미륵의 노여움을 산 마을의 20대 청년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손이 없는 사람은 미륵에 와서 빌면 아이를 얻을 수 있어 옛날에는 다른 마을 사람들도 아이를 낳기 위해서 미륵에 와서 빌었다고 한다.

미륵에 대한 실제적 경험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등이 미륵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광암 마을에서 행해지는 대표적인 종교 행위로는 미륵제와 시제가 있다. 연주 현씨 일가가 대부분이었던 시절에는 10월에 지내는 시제가 종교적 믿음을 강하게 형성하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미륵제가 그 중요성을 대체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도시 이주와 농촌의 고령화 등 어려운 상황에서 미륵제는 광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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