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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리 대천동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605
한자 雲岩里大川洞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문화유산/무형 유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큰할머니 당산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작은할머니 당산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
의례 장소 할아버지 당산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신당/신체 소나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 제사.

[개설]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1월 14일 밤 10시쯤]에 마을의 평안과 무사 안녕을 비는 뜻에서 당산신에게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 자금으로 제물을 장만하고, 대표를 선정해서 마을의 세 곳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원래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영보역이라는 역촌(驛村)이었으나 조선 세종 때 역을 지금의 영암읍 역리로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보역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또, 두 골짜기의 물이 마을 앞에서 합쳐져 큰 내가 되어 흘러 대천동이라 부른다고 한다.

운암리 대천동 당산제 는 언제부터 지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마을 세 곳에 큰할머니 당산, 작은할머니 당산, 할아버지 당산이 있어서 이들에 대한 신앙을 이어 오고 있다. 원래 큰할머니 당산은 수백 년 된 소나무였지만, 수년 전에 태풍으로 죽어서 그 뒤에 심은 소나무를 당산나무로 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은 큰할머니 당산, 작은할머니 당산, 할아버지 당산 이렇게 세 곳이다. 큰할머니 당산은 큰 철륭, 작은할머니 당산은 작은 철륭, 할아버지 당산은 도총이라고도 부른다. 모두 소나무이며 2013년 현재 작은할머니 당산의 소나무는 말라 죽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당산나무 앞에는 모두 상석(床石)을 해놓았다. 따라서 제사를 모실 때는 따로 상을 준비하지 않고 상석 위에 진설한다.

[절차]

제일 먼저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매년 마을 일을 맡아 보는 유사 두 명을 포함하여 한 명을 더 선정한다. 제관은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고, 부부 간에 잠자리를 삼가야 한다. 제관에 선정되면 특히 당산제를 지내기 전날부터는 몸을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마을 사람들이 나이가 많이 들어 예전처럼 궂은 데를 엄하게 가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제사 비용은 따로 걷지 않고 마을 자금으로 쓴다. 유사 두 명이 10만 원 정도로 장을 본다. 제사 날짜와 가장 가까운 장날, 영암읍 5일장에서 장을 보고 유사 집에 보관해 놓는다. 밤·대추·곶감·북어포·오징어포 등을 장만한다. 제주는 소주를 사용한다. 제수물목기(祭需物目記)가 없어서 유사가 그때그때 장을 봐서 제물을 마련하므로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제사 음식은 보관하고 있던 제물로 유사 부부가 장만하는데 미역국을 준비하고, 떡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당산제를 지내기 전 각 가정에 황토를 깔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당산 자리에만 뿌리고, 금줄도 당산에만 친다. 당산나무 청소는 음력 1월 13일에 유사가 한다.

당산제는 항상 고정된 시각에 하므로 마을 사람들에게 따로 알리지 않는다. 세 명의 제관은 나이순으로 초헌, 아헌, 종헌을 정한다. 유사가 진설을 하고 나면 당산제를 시작한다. 초헌이 먼저 술을 올리고, 절을 한 후 앉아서 축을 읽는다. 축관은 따로 선정하지는 않지만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한다. 제관 셋 중에 축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읽기도 한다. 축문은 태워 버리면 다음 해에 쓸 수가 없으므로 태우지 않고 읽기만 한다. 축문 대신 백지를 세 장 가량 소지(燒紙)한다.

그 뒤로 아헌, 종헌 순으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마을 사람 개인이 가서 자신의 소원을 비는 소지를 올리거나 하는 일은 없고, 제관이 마을 전체 대표로 소지를 올린다.

당산제가 모두 끝나고 나면 대추, 밤 등을 주변에 뿌리는 것으로 헌식(獻食)을 한다. 예전에는 제관들은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3일을 몸가짐을 조심했다고 한다. 당산제를 모신 것이 허사가 될까 봐 그랬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축문]

당산축(堂山祝)

유세차 ◯◯정월 ◯◯삭 십오일 감소고우 당산지신 보우아리 유뢰신명어강 유경가금 불상자치 신량앙우 당산음양조화 영세안인재진전 예건고근고(維歲次 ◯◯正月 ◯◯朔 十五日 敢昭告于 堂山之神 保佑我里 惟賴神明於降 有慶可禁 不詳玆値 辰良仰于 堂山陰陽調和 永世安人載陳奠 禮虔告謹告).

[부대 행사]

12월 25일에 마을 총회를 열어 마을 일도 논의하고, 당산제에 쓴 비용도 결산한다. 예전에는 대보름에 여자들이 참여해 마당밟이를 근근이 이어왔는데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대천동 마을에서는 6·25 전쟁 후에 여러 가지 민속도 없어졌고, 풍물놀이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황]

대천동 주민들은 마을에 사람이 워낙 적고 또 2013년 현재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라서 당산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 당산제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어 아직은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는 꼭 지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8·15 해방 이후 전염병이 심하게 유행을 해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는데 대천동 마을 사람들은 한 명도 걸리지 않았다. 대천동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당산제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사를 성의 있게 지내서 득남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고, 궂은 것을 보고 제를 지내면 급사를 할 것이라는 말이 있어서 더욱 조심히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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