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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리 백자 가마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334
한자 明洞里白瓷窯址
이칭/별칭 점앞,점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성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명동리 백자 가마터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지도보기
성격 백자 가마터
지정 면적 20m[길이]|2~3m[높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개설]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규제에도 불구하고 백자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아 일반 사대부에게는 1616년(광해군 8) 이전부터 확대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기술이 확산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변천]

굽 안 바닥의 곡면이 얕은 변형 오목 굽을 갖고 있으며 태토 비짐을 받쳐 포개 굽고 있어 명동리(明洞里) 백자(白瓷) 가마터는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조선 후기 지방 백자 가마의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위치]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 전방 800m 지점 가모산의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2013년 현재 전주 최씨 소유의 선산으로 명동리 백자 가마터는 점앞 또는 점등으로도 불린다.

[발굴 조사 경위와 결과]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며 『고고학 지도』와 『영암군의 문화 유적』, 『영암군지』,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등의 문헌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황]

밭과 접경한 산기슭 경사면의 대나무 숲에 길이 약 20m, 높이 2~3m의 가마터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대접과 발 등을 중심으로 백자가 확인되고 있어 일상 생활용기를 중심으로 생산하였던 가마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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