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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76
한자 政治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태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국가 권력 혹은 지방 자치 단체가 권력을 획득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에 영암군민이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활동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개설]

영암군 지역의 정치 활동으로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시 의원 등을 선출하는 영암군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시의원들이 영암군청영암군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자치 활동을 들 수 있다.

[정부 수립 이전의 정치]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의 승리로 우리나라는 일제 35년간의 식민 통치로부터 감격의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위 38선을 경계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 조국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방 직후에는 국가 내의 권력 구조나 정치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황 아래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급조된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1948년 2월 16일 UN 소회의의 결의와 동년 3월 17일 공포한 군정 법령(軍政法令) 제 17호 국회 의원 선거법에 의거하여 선거가 가능한 지역인 남한에서 UN 임시 한국 위원단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20일에 선거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보게 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의 정치]

1. 제1 공화국 시기[1948~1960년]

6·25 전쟁 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되어 정부의 경제 부흥 계획이 수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승만의 제1 공화국 정부는 피난 국회에서의 정치 파동들이 말해주듯이 독재 정치를 감행하였다. 3·15 부정 선거는 마침내 학생 등을 선봉으로 한 4·19 혁명으로 폭발하고 전 국민의 호응 아래 자유당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2. 제2 공화국 시기

자유당 정권의 종말은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고 제2 공화국의 탄생을 재촉하였다. 허정(許政) 과도 정부는 4·19 의거를 4월 민주 혁명으로 규정하고 7·29 선거로 제2 공화국 수립의 산파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새로운 정부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 책임제로 바뀌었다. 한편 4·19 혁명으로 지방 자치법이 개정되어 종래의 임명제가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선거 제도로 전환함에 따라 1960년 12월 29일 사상 최초로 도지사 직접 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3. 제3 공화국 시기

그러나 독재 정치에서 벗어나 한꺼번에 자유가 찾아오자 사회 질서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집권 민주당은 신·구파로 나뉘어 혼란은 극도에 달하였고 장면(張勉) 정부는 제대로 내각 책임제 정치를 펴보지도 못한 채 집권 반 년 만에 5·16 군사 쿠데타로 그 막을 내렸다. 쿠데타 정부는 국가 재건 비상 조치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다가 민정 이양을 위한 헌법 개정안을 1962년 11월 30일 확정하고 12월 17일 국민투표에 붙여 확정 공포하였다. 민정 참여를 위한 쿠데타 정부는 민주 공화당을 결성하고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를 지명하였다. 박정희는 민정당이 내세운 윤보선과 대결하여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1967년 5월 3일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와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도 재선되었다.

4. 제4 공화국 시기

1972년 10월 유신 이후 국민 투표를 통해 유신 헌법이 제정됨에 따라 제4 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을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로 선출했다. 국회 의원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 간접 선거로 73명, 직접 선거로 지역구당 2명씩 146명을 선출했다. 이에 따라 통일 주체 국민 회의는 제8대, 제9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선출하였다. 그리고 1979년 10·26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최규하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한데 이어 최규하의 하야로 전두환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5. 제5 공화국 시기

1980년 10월 22일 국민 투표에 의한 헌법 개정에 따라 대통령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로 선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1년 2월 25일 실시된 제12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정당 전두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6. 제6 공화국 시기

제6 공화국은 제9차 헌법 개정을 통해 탄생하였다. 제5 공화국을 통한 전제주의적 통치는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이 감행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여건을 조성하였다. 6월 항쟁은 정치·경제·문화·사회 분야의 민주화와 더불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더 이상 지체될 수 없는 범국민적 염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와 같은 국민적 염원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는 여야 합의의 단일 개헌안을 마련케 하였고 이 개헌안은 10월 12일 국회 재적 의원 272명 중 254명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의결되었다. 그 후 제6 공화국 헌법에 따라 시행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 세력의 분열에 따라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주 정의당은 과반수 미달로 여소야대의 정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민주 정의당은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야당인 통일 민주당과 신민주 공화공의 3당이 합당하여 민주 자유당이란 새로운 당명으로 여대야소의 정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2년 12월 여당인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정부를 탄생시켰다.

국제 통화 기금[IMF] 관리 체제라는 초유의 경제 위기 속에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 회의 김대중 후보가 전국 40.3%의 지지를 얻어 전국 38.7%를 득표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12월 19일 실시되었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등 7명의 후보가 경쟁하여 전국 48.9%를 득표한 노무현 후보가 전국 46.6%를 득표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9일 실시되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등 12명의 후보가 난립했는데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이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전국 득표율 48.7%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2012년 12월 19일에 실시되었으며 선거 결과,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최초로 과반 이상의 득표를 통해 당선되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에서 탈당하지 않음에 따라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같은 당을 가진 인물들이 대통령을 이어가게 되었다.

[전국 지방 동시 선거 이후 영암의 정치]

전국 지방 동시 선거는 지방의 정치 활동으로,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자치 단체 안에서 권력을 획득하고 이를 행사하기 위한 행위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시도로서 지방 지역도 정치 교육을 실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지역 주민과 지방 행정이 서로 소통하고 지역 주민의 손으로 지역의 대표를 선출함으로서 점차 독자적인 범위를 갖게 되었다.

1.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1995년부터 실시된 제1회 전국 지방 동시 선거에서 영암군의 구·시·군 의장 선거는 민주 자유당 소속의 전정식과 민주당 소속의 박일재, 무소속의 김철호가 후보로 나왔으나 민주당 소속의 박일재가 1만 2691표의 득표수와 36.70%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시·도 의회 선거에서 영암군은 영암군 제1 선거구와 영암군 제 2선거구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영암군 제1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최철환과 무소속의 강우원, 무소속의 하대주가 후보로 나왔고 영암군 제2 선거구에서는 민주당의 전동평과 무소속의 김종팔, 무소속의 김철호가 후보로 등록하였으나 제 1선거구에서는 강우원이 7,386표의 득표수와 37.20%의 득표율로, 제2 선거구에서는 전동평이 6,112표의 득표수와 43.10%의 득표율로 각각 당선되었다. 구·시·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영암군의 각 읍·면별로 박영배, 서동열, 김희국, 임광순, 박종선, 곽순영, 최재상, 전갑홍, 조광호, 김광년, 김인호가 당선되었다.

2.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1998년에 진행된 제2회 전국 지방 동시 선거에서 영암군의 구·시·군 의장 선거는 새 정치 국민 회의 소속의 김철호와 무소속의 박일재가 출마하였으며 새 정치 국민 회의 소속의 김철호가 1만 7653표의 득표수와 51.9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시·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영암군 제1 선거구에서 한나라당의 최충, 새 정치 국민 회의의 강우원, 무소속의 양강섭, 무소속의 오병훈이 출마하였고, 영암군 제2 선거구에서는 새 정치 국민 회의의 전동평, 무소속의 김철호가 출마하였으나 각각 새 정치 국민 회의의 강우원과 전동평이 당선되었다. 강우원은 8,732표의 득표수와 47.70%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전동평은 8,510표의 득표수와 56.90%의 득표율을 보였다. 구·시·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영암군의 각 읍·면에 따라 박영배, 조영주, 정찬헌, 임광순, 강동하, 이진용, 허금용, 이성규, 김영양, 김광년, 김인호가 당선되었다.

3. 제3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2002년에 진행된 제3회 지방 선거에서 영암군의 구·시·군 의장 선거는 재선에 도전하는 새 천년 민주당의 김철호와 무소속의 김일태가 출마하였다. 새 천년 민주당의 김철호가 1만 8369표의 득표수와 54.40%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시·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영암군 제1 선거구에서 새 천년 민주당의 강우원과 무소속의 김종렬이, 영암군 제2 선거구에서 한나라당의 전일영과 새 천년 민주당의 전동평, 무소속의 김철호가 출마했으며 각각 강우원과 전동평이 당선되었다. 강우원은 9,124표의 득표수와 51.70%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전동평은 7,724표의 득표수와 49.10%의 득표율을 보였다. 구·시·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영암군의 각 읍·면에 따라 각각 박영배, 조영주, 한영택, 김승일, 김수호, 이진용, 김두만, 박영수, 조광호, 김강길, 김기창이 당선되었다.

3. 제4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2006년에 진행된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영암군의 구·시·군 의장 선거는 열린 우리당의 김일태와 민주당의 장경택이 출마하였다. 그 결과 열린 우리당의 김일태가 1만 6691표의 득표수와 53.6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시·도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영암군 제1 선거구에서 열린 우리당의 김종열과 민주당의 강우원이 출마하였으며, 영암군 제2 선거구에서는 열린 우리당의 전갑홍과 민주당의 강우석이 출마하였다. 그 결과 제1 선거구에서는 강우원이 8,318표의 득표수와 52.2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제2 선거구에서는 강우석이 9,413표의 득표수와 62.4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구·시·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각각 가, 나, 다, 라로 나뉜 선거구에서 유호진, 박영배, 유선열, 김점중, 강찬원, 이보라미, 박영수, 조광호가 당선되었다.

3. 제5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

2010년에 진행된 제5회 지방 선거에서 영암군의 구·시·군 의장 선거는 민주당의 김일태 단일 후보로 출마되어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시·도 의회 의원 선거에는 영암군 제1 선거구에서 민주당의 손태열이, 영암군 제2 선거구에서 민주당의 강우석이 출마하여 각각 무투표 당선되었다. 구·시·군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가, 나, 다, 라로 나뉜 각각의 선거구에서 유호진, 박영배, 김점중, 김영봉, 김철호, 이보라미, 최병찬, 김연일이 당선되었으며 이 중 라 선거구에 속한 최병찬과 김연일은 무투표 당선되었다.

그 외 지방 자치법 개정에 따라 발족된 영암군 의회는 1990년 12월 31일 법률 제4310호로 1991년 3월 26일 시군 의회 의원 선거에 의해 1991년 4월 15일 의원정수 11명으로 개원하였다. 의회 임시회는 매년 수시로 개최되며 정례회는 매년 2회, 제1차 정례회는 매년 7월 10일에 집회하고 단 총선거가 실시되는 연도의 제1차 정례회는 의회의 의결로 7·8월 중에 따로 정할 수 있으며, 제2차 정례회는 매년 11월 23일에 1·2차 집회를 합하여 35일 이내로 개최하므로 방청을 원하는 군민이나 단체는 회기 중에 방청을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영암군민들의 권리적 의무로서 행해지는 영암군의 정치는 더욱 다양하고 다원화된 선택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영암군지 편찬 위원회, 『영암군지』(영암군, 1998)
  • 선거 관리 위원회(http://info.nec.go.kr)
  • 영암군(http://www.yeongam.go.kr)
  • 영암군 의회(http://www.yac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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