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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09
한자 王仁
이칭/별칭 와니[王仁],와니기시(わにき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405년 - 왕인, 응신 천황의 초빙으로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됨
묘소|단소 왕인 묘소 - 일본 혼슈 오사카부 히라카타시 후지사카히가시마치 니초메
성격 학자
성별

[정의]

삼국 시대 백제 때 일본에 가서 태자를 가르쳤다는 영암 출신의 학자.

[개설]

왕인(王仁)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 서기(日本書紀)』에 와니[王仁], 『고사기(古事記)』에는 와니기시(わにきし)라고 표기되어 있다. 왕인 박사는 백제 사람으로, 일본 응신 천황의 초빙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해박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 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가계]

왕인의 후손은 대대로 일본 조정에서 학문에 관한 일을 맡아 봉사하며 일본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왕인의 후손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교기[行基][668~749] 대사이다. 교기의 아버지는 고시 사이치[高志才智]인데, 왕인의 자손인 가와치노아야시[西文氏]의 일족이었다. 741년 3월, 쇼무[聖武] 천왕은 교기를 만나 전무후무한 거대 불사(佛事)를 맡기는데, 나라[奈良]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大佛)을 조성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일본 불교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도다이지의 대불이 바로 왕인의 후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한 포상으로 일본 조정에서는 교기에게 보살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활동 사항]

왕인 박사는 해박한 경서의 지식으로 응신 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 서기』에 따르면 404년(응신 천황 15) 8월에 백제왕이 아직기(阿直岐)와 좋은 말 두 필을 보냈는데, 경전에 능한 아직기는 말을 관리하면서 태자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이때 응신 천황이 아직기에게 “그대와 같은 훌륭한 박사가 또 있는가?” 하고 묻자, 아직기는 “왕인이라는 뛰어난 이가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응신 천황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청하였다고 한다. 405년 2월 『논어』와 『천자문』 등을 가지고 일본에 도착한 왕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태자는 학문을 배웠는데, 왕인은 경서에 두루 통달하여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왕인 박사는 학문 외에도 기술 공예의 전수, 일본 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하였다. 일본 황실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백제 문화 전수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을 계몽하였다.

[묘소]

일본 혼슈[本州]의 중부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枚方市] 후지사카히가시마치[藤阪東町] 니초메[2丁目]에 있는데, 1731년에 발견된 둥근 자연석이 왕인의 묘라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왕인은 일본 아스카[飛鳥] 문화의 원조 또는 학문의 신으로 칭송되고 있다. 영암군에서는 왕인 박사 무덤, 학이문, 백제문, 전시관, 유허비, 성천(聖泉), 성천(聖川), 탄생지, 문산재, 양사재, 도갑리 왕인 석상, 책굴, 홍살문, 돌정 고개, 상대포왕인과 관련된 유적을 기념물로 지정하였고, 왕인 박사 유적지가 국민 관광지로 조성되었다. 왕인 박사 유적지에서는 매년 벚꽃이 피는 4월 초에 영암 왕인 문화 축제, 10월에 왕인 국화 축제가 열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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