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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림리 낭주 최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92
한자 西鳩林里朗州崔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907년 - 서구림리 낭주 최씨 집성촌 입향조 최지몽 출생
성격 동성 마을
면적 3,768,563.1㎡
가구수 50가구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낭주 최씨 집성촌.

[개설]

낭주 최씨(朗州崔氏)의 시조 최흔(崔昕)은 신라 진성왕 때 사람으로 원보상(元輔相)을 지냈다. 최흔이 낭주에 정착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후손들이 낭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최흔 이후는 세대가 확실치 않아 고려 말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최희소(崔希沼)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서구림리낭주 최씨는 고려 전기에 최지몽(崔知夢)[907~987]이 군서면 구림리에서 출생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명칭 유래]

구림은 동구림리, 서구림리, 도갑리 일대 마을을 일컫는 것으로 도선이 사생아로 태어나 버림받았을 때 비둘기가 품어서 살려 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으로 구림의 서쪽에 있어 서구림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율정리(栗亭里)·서호정리(西湖亭里)·남송정리(南松亭里)·북송정리(北松亭里)·국사암리(國師岩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여 서구림리로 개설하였다.

[형성 및 변천]

낭주는 영암(靈巖)의 옛 이름으로 마한의 영토였다가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렸고, 758년(경덕왕 17)에 영암군(靈巖郡)이 되었다.

낭주 최씨는 입향조 최지몽이 907년 군서면 구림리에서 출생한 후, 18세에 고려 건국에 기여하여 영화를 누렸다. 최지몽의 출생지인 구림 마을에 다시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룬 사람은 중시조 최희소의 13세손인 최진하(崔鎭河)[1600~1673]이다.

[자연환경]

서구림리는 현재 구림 마을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사암·상대포·영암 도기 박물관 등의 여러 유적이 분포한다. 남쪽으로 남도(南道)의 명산인 월출산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 잡고 있어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며, 주변에는 상업 지역도 형성되어 있다.

[현황]

낭주 최씨는 2012년 현재 군서면 서구림리에 50가구 가량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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