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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758
한자 壽星社
이칭/별칭 남 수성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 224번지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탁현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38년연표보기 - 수성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 수성사 6·25 전쟁으로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3년 - 수성사 재건축
신축 시기/일시 2005년 4월 - 수성사 신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4월 12일 - 수성사 경내에 단군전 준공
현 소재지 수성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 224번지지도보기
원소재지 수성사 - 전라남도 영암읍 동무리 158 영암군청 부근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6칸
측면 칸수 2칸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조선 시대 누정.

[개설]

수성사(壽星社)는 원래 60세 이상의 전직 관리와 학자들의 수양처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청유(淸遊)의 장소이었다. 수성사라는 액호(額號)는 1655년(효종 6) 향토 주민의 귀감이 되는 장소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라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위치]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다. 영암 버스 터미널에서 경찰서 삼거리 방향으로 약 200m 가면 수성사가 있다.

[변천]

수성사는 1538년(중종 33) 객사[현재의 동무리 영암군청] 옆에 건립되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 현재의 위치 남풍리로 이전되었다. 지금의 위치는 조선 시대 때 부군당(府君堂)이 있던 곳으로, 부군당은 관아에서 신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부군당이 폐쇄되자 이곳으로 수성사를 이전하고 부군당의 역할을 맡도록 했으며, ‘남 수성사(南壽星社)’라고도 불렀다.

6·25 전쟁 이 발발하고 소장 문서들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1953년에 다시 수성사를 건립하였다. 그 뒤 2005년 4월에 이르러 수성사가 낡고 헐어서 신축하였다.

[형태]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현황]

수성사 내부에는 「수성사 중수기(壽星社重修記)」와 37개의 시문 편액이 있다. 2012년 4월 12일 수성사 경내에 단군전이 준공되었으며, 10월 개천절 단군제를 봉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수성사는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영암 원로들의 고견을 모으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또 2013년 현재는 단군제를 지내는 등 영암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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