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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06
한자 城郭
이칭/별칭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고용규

[정의]

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개설]

성곽은 국가가 군사적인 목적을 갖고 국방이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했던 군사 시설물이다. 본래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로서 성은 내성(內城)을 말하고, 곽은 성 주위를 에워싼 외성(外城)[羅城]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겹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성곽 또는 성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양성지(梁誠之)가 ‘성곽의 나라’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삼국 시대 이래 다양한 형태의 성곽이 분포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국토의 70%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진 지형적인 영향과 잦은 왜침으로 인한 역사적 경험에서 산성(山城)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기능과 목적에 따라 수도에 쌓은 도성(都城)을 비롯하여 각 지방의 치소(治所)에 축조한 읍성(邑城), 절도사나 첨절제사 등이 관할하는 육·수군의 영진성(營鎭城), 국경지대를 가로막아 쌓은 행성(行城), 험한 산에 축조하여 양식과 무기를 보관하였다가 유사시에 입보(入保)하여 지키는 산성(山城), 만호·권관이 지키는 연변의 요충지에 축조한 진보성(鎭堡城) 등 다양한 종류의 성을 쌓았다.

영암군 지역의 동쪽은 노령산맥의 줄기가 이어져 내려 산지를 이루고, 서쪽은 하천 하구에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특히 남동부에 월출산(月出山)이 천황봉(天皇峰)[811m]을 최고봉으로 구정봉(九井峰)·사자봉(獅子峰) 등의 많은 봉우리를 만들고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주위 일대에 백룡산(白龍山)·국사봉(國師峰)·흑석산(黑石山)·주지봉(朱芝峰)·도갑산(道岬山) 등이 솟아 있으며, 과거 영암군에 속했던 해남군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영암읍과 군서면에 걸쳐 있는 영암만(靈巖灣)은 서해바다로부터 영암으로 오는 뱃길의 어귀에 해당한다. 목포에서 영암군과 무안군 사이의 좁은 해협을 지나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만이 Y자형으로 있다. 이들 2개의 만은 남북으로 서로 면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조건을 바탕으로 영암군에는 여러 시기에 다양한 형태의 성곽이 쌓아졌다.

현재 영암군 지역에 있는 산성은 활성산성 터, 궁성산성 터, 마봉산성 터, 성틀봉 토성 터, 도갑산성 터, 성묘산성 터, 성산성 터, 선황산성 터 등 8개소의 산성과 영암읍성 터를 합하여 총 9개소가 있다.

조선 시대의 영암군은 오늘날과 달리 서남해안의 바다를 끼고 있었다. 지금의 해남군 북평면의 북평향(北平鄕)과 해남군 송지면의 송지부곡(松旨部曲)을 영역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지역에는 달량(達梁)·이진진(梨津鎭) 등 수군진과 갈두산 봉수(葛頭山 烽燧)·달마산 봉수(達磨山 烽燧) 등의 관방 유적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행정 구역을 단위로 해서 성곽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하는 만큼, 오늘날 해남 지역의 달량진성(達梁鎭城)과 이진진성(梨津鎭城)은 제외하고, 현재의 영암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성곽에 대해 살펴보자.

[성곽의 입지]

이들 성곽을 먼저 입지별로 분류해 보면, 성틀봉 토성영암읍성은 해발 50m 이하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고, 성묘산성[100m], 성산성[125.9m], 선황산성[181.8m]은 100~200m 이하의 낮은 산에 입지하고 있다. 도갑산성이 175~280m의 높이에 걸쳐 있어 중간 정도의 높이이고, 궁성산성[484.1m], 마봉산성[402m], 활성산성[498m]이 400m 이상의 해발 고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입지상의 차이는 영암군의 중·서부 지역이 영산강과 그 지류역의 평지 또는 구릉이 발달하여 있는 반면에, 동부 지역은 산지가 발달한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는 지형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성틀봉 토성성묘산성영산강과 가까운 지류역에 분포하고 있고, 선황 산성성산성이 해남만과 가까이 입지하고 있어 고대 해로와의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성곽의 형식]

성곽의 형식은 산성의 경우 모두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쪽 사면부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테뫼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활성산성은 산정 상부를 중심으로 능선상에 축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벽과 남문이 골짜기를 끼고 있어 테뫼식과 포곡식의 중간 형태로 분류가 가능하다. 이밖에 구릉상에 입지한 성틀봉 토성도 일단 테뫼식으로 분류되고 있고, 다만 영암 읍성의 경우는 평산성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도갑 산성도갑사의 골짜기 입구를 가로 막아 쌓은 관문성으로 주목되고 있다.

축성 재료상 성틀봉 토성마봉산성활성산성은 판축 기법으로 축조한 토성에 해당하며, 성산성, 선황산성, 성묘산성, 도갑산성, 궁성산성은 협축식의 석성, 영암읍성은 내탁식의 석성으로 분류되고 있다.

평면 형태는 활성산성영암읍성은 장방형(長方形), 성묘산성궁성산성은 타원형(橢圓形), 성틀봉 토성마봉산성은 원형, 도갑산성은 일자형이다. 선황산성은 현재까지 유구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추후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성곽의 규모]

규모에 있어서는 성틀봉 토성이 둘레 약 190m로 가장 작고, 성산성이 약 235m, 마봉산성이 300m로서 소규모의 보루 형태를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성묘산성 382m, 선황산성도갑산성이 약 540m로서 중간급에 속하며, 궁성산성이 700m, 활성산성이 약 1.500m로서 영암군에 분포하는 산성 가운데에서 가장 대형급에 속한다. 이 외에 영암읍성이 약 2,100m로서 조선 시대 읍성 중에서도 대형급에 속해 고을의 위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성곽 축조 시기]

영암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성곽의 경우는 대부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헌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유물도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현 단계에서는 축조 시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일부 조사가 이루어진 성틀봉 토성이 5세기 중반의 마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져 옹관묘 축조 세력의 거점성으로 유력해짐에 따라 영산강 유역 고대 정치체의 실체 규명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서 부각되고 있다. 영암 읍성의 경우도 출토 유물과 문헌 기록을 통해 고려 말 처음 축조된 것으로 밝혀져 전라남도 지역의 읍성 가운데 고려 시대 축조된 몇 안 되는 사례로서 주목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늘어난 인구에 맞추어 1433년(세종 16) 겨울 읍성의 확장 공사에 착수하여 1434년에 옹성과 해자 등을 제외한 주요 시설을 완공하였고, 옹성과 해자 등의 부속 시설은 1452년(단종 원년) 무렵에 완공함으로써 영암읍성의 전체적인 틀을 갖춘 점에서 학술적인 의미와 함께 추후 조사가 기대된다고 하겠다. 또한 성묘산성성산성영산강과 지류역, 해남만에 인접해 있는 해발 200m 이하의 낮은 산에 입지하고 있는 산성이라는 점에서 축조 시기가 고대로 소급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도갑산성은 성돌의 다듬은 수법과 축조 기법으로 보아 통일 신라 때 축조되었을 가능성과 더불어, 계곡을 가로 막아 축조한 관문성이서 축조 배경이 주목되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성곽 현황]

현재 영암군 지역에는 활성산성 터, 궁성산성 터, 마봉산성 터, 성틀봉 토성 터, 도갑산성 터, 성묘산성 터, 성산성 터, 선황산성 터 등 8개소의 산성과 영암읍성 터를 합하여 총 9개소가 있다. 하지만 이들 성곽 가운데 영암읍성을 제외하고는 발굴 조사한 적이 없고, 문헌 기록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축조 시기나 성격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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