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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576
한자 山湖里銅巖支石墓群
이칭/별칭 산호리 동암 지석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동암 마을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영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11월 12일연표보기~1992년 12월 12일연표보기 -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 목포 대학교 박물관 고인돌 발굴
소재지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동암 마을 산68|산69번지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목포 대학교 박물관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도림리 61
성격 고인돌
양식 개석식
크기(높이,지름) 390㎝[가군 가장 큰 덮개돌 길이]|2m 내외[가군 나머지 덮개돌 길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동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위치]

산호리(山湖里) 동암(銅巖) 고인돌 떼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동암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었다. 가군은 산호리 산68번지와 산69번지에 있으며, 삼호 검문소에서 독천 쪽으로 약 700m 떨어진 야산에 민묘(民墓)와 함께 13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이곳은 대불 대학교 동쪽으로 수로 건너편이다. 나군은 가군에서 독천 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으로 동암 마을 가기 전 도로 우측 야산에 8기가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 중 가군은 1992년 영산강 3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삼호 반도를 절단하는 수로 공사에 편입되어, 1992년 11월 12일부터 1992년 12월 12일까지 31일 동안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덮개돌은 이전된 상태였으나 무덤방은 10기가 확인되었고, 간 돌검 등 부장 유물도 발견되었다.

산호리 동암 고인돌 가군 발굴 결과 고인돌의 무덤방이 10기가 확인 되었는데 모두 남동-북서 방향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다. 산호리 동암 고인돌 나군은 1986년도 조사에서 8기가 확인되었으나 도로 공사로 모두 파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형태]

가군의 덮개돌은 가장 큰 것이 길이 270㎝ 정도이고 나머지는 1.5~2.5m로 평면이 타원형을 한 소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무덤방의 형태는 판석을 세워 만든 돌널형과 깬돌로 쌓은 돌덧널형인데, 개간으로 덮개돌이 제거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일부의 무덤방 위에서 뚜껑돌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원래는 판석(板石) 몇 장으로 무덤방을 덮었던 개석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나군의 가장 큰 덮개돌은 길이 390㎝이나 나머지는 2m 내외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받침돌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

자루식 돌검[有柄式石劍], 돌 화살촉[石鏃], 삼각형 돌칼[三角形石刀], 대팻날 석기, 홈자귀[有溝石斧], 붉은 간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1986년 조사 시 돌 화살촉 4점, 돌도끼 1점, 돌검 자루 조각 1점이 수습되었다.

[현황]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 중 가군 고인돌은 1986년 조사 시에 총 13기가 확인되었으나 밭으로 개간되면서 덮개돌이 모두 파괴·이동된 상태이다. 영산강 수로 공사로 하부 구조 확인하기 위해 1992년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2013년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나군은 도로 확장 공사로 모두 파괴되었는데, 고인돌이 있던 지명은 ‘침 뱉는 골짜기’라고 전한다. 또한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는 ‘산호리 동암 지석묘’로도 불린다.

[의의와 평가]

산호리 동암 고인돌 떼 중 가군은 훼손된 상태지만 발굴 조사로 그 하부 구조가 확인된 고인돌군이다. 돌널과 돌덧널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부장 유물로 간 돌검과 돌 화살촉이 출토되어 영산강 하구에 자리한 고인돌의 구조와 부장 상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간 돌검의 경우 일단 자루식으로 영산강 유역에서는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돌검 형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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