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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563
한자 長川里槐陰支石墓群
이칭/별칭 장천리 괴음 지석묘,바우배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괴음 마을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영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4년 5월 4일연표보기~1984년 6월 1일연표보기 -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고인돌 발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선사 유적 공원 조성
소재지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괴음 마을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목포 대학교 박물관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도림리 61
성격 고인돌
양식 기반식
크기(높이,지름) 370㎝[나군 고인돌 길이]|280㎝[나군 고인돌 폭]|80㎝[나군 고인돌 두께]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괴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위치]

장천리(長川里) 괴음(槐陰) 고인돌 떼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괴음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서호면 소재지-청룡리 간 도로에서 신흥 마을과 산소 마을로 넘어가는 농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고개 정상부 좌측 밭에 6기가 있다. 나군은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 마을 앞 도로변의 정비 복원된 선사 유적지 안에 11기가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나군은 경지 정리 사업으로 훼손될 고인돌 11기 중 4기가 1984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형태]

가군은 6기의 고인돌이 1열을 이루고 있었으나 2013년 현재는 모두 이동되어 밭 가장자리에 모여 있다. 가장 큰 것은 길이 340㎝, 폭 230㎝, 두께 35㎝이며, 받침돌이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주민들은 가군 고인돌을 ‘바우배기’라 한다.

나군은 고인돌 11기가 타원형으로 군집되어 있는데, 이 중 도로에 접하는 4기만 도로 공사로 인해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 아래 무덤방[石室]은 돌널형[石棺形]으로 1호와 4호에서 확인된다. 1호 덮개돌은 응회암질(凝灰岩質) 역암(礫岩)으로 크기는 길이 370㎝, 폭 280㎝, 두께 80㎝이다. 하부 구조는 3매의 받침돌[支石]이 있고, 무덤방의 주변은 깬돌[割石]로 무질서하게 쌓인 묘역 시설을 가지고 있다. 뚜껑돌[蓋石]은 길이 135㎝, 폭 90㎝ 크기의 판돌 1매가 무덤방을 반쯤 덮고 있다. 무덤방의 크기는 길이 180㎝, 너비 44㎝, 깊이 30㎝이다. 무덤방의 장벽은 4~5매의 판석으로, 단벽은 판석 1매를 각각 세워 축조하였다. 바닥에는 판석을 깔고 그 사이를 잔자갈로 깔았다. 4호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170㎝, 폭 110㎝, 두께 30㎝로 소형인데, 하부에는 뚜껑돌 1매와 파괴된 무덤방이 있다. 나군 고인돌의 형태는 받침돌을 가진 기반식 고인돌과 개석식 고인돌이 있으나 무덤방은 모두 돌널형이다.

[출토 유물]

유물은 1호 고인돌에서 ‘+’자 형 돌칼 자루 끝장식[石製 劍把頭飾], 한국식 동검[細形銅劍] 조각,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고, 3호에서는 홈자귀[有溝石斧]가 출토되었다.

[현황]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 가군은 이동되어 밭둑에 모여 있어 파괴되었으며, 나군은 11기 중 4기가 1984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된 고인돌 주변의 경지 정리 사업을 실시할 지역을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목포 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발견된 곳에 장천리 선사 주거지를 복원하여 선사 유적지를 조성하였고, 고인돌도 부지 내로 이전·복원되었다. 또한 장천리 괴음 고인돌 떼는 ‘장천리 괴음 지석묘’로도 불린다.

[의의와 평가]

장천리에는 5개군(群)에 52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고, 엄길리 고인돌과도 인접하고 있다. 고인돌의 구조가 주형의 받침돌과 주변의 묘역 시설, 돌널형 무덤방임이 밝혀져 고인돌 형태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한국식 동검과 돌칼 자루 끝장식이 함께 발견되어 고인돌의 하한 연대를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편 고인돌 주변에 주거지를 복원한 유적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고인돌과 주거지를 함께 볼 수 있게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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