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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37
한자 驛站
이칭/별칭 역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변남주

[정의]

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앙과 지방간 명령 전달 및 운수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암 일대에 설치되었던 교통 및 통신 제도.

[고려 시대의 역참]

역참 제도는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관리들의 숙박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역(驛)은 삼국 시대부터 이미 설치되었다. 고려 성종 대에 와서 12목 군현제의 확립과 더불어 역참제가 구체화되었고, 현종 대에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완성되었다. 당시 전라도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에 21개 역, 승라주도(昇羅州道)에 30개 역, 산남도(山南道)에 28개 역, 남원도(南原道)에 12개 역이 편성되었다. 이때 영암군의 영보역의 경우는 승라주도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의 역참]

조선 후기에는 모든 역승(驛丞)이 찰방으로 승격되고 40도 546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전라도는 삼례도(參禮道), 제원도(濟原道), 오수도(獒樹道), 청암도(靑巖道), 경양도(景陽道), 벽사도(碧沙道)로 나뉘어 관리되었다. 이때 영암의 영보역은 나주 청암도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의 역의 구성원으로는 종6품 찰방을 비롯하여 역리(驛吏), 역노(驛奴), 역비(驛婢) 등이 있었다. 찰방은 역체(驛遞)의 업무를 맡아 보면서 역장의 일도 겸하게 되어 있어 교통과 통신 업무를 관장하였다. 또 유사시에 병력도 동원할 수 있었다. 역리는 급한 관용 업무에 대비하였고, 역노비는 관아의 잡일을 하였다. 그리고 역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위해서 역둔토(驛屯土)라는 토지를 두었다. 이러한 역참 제도는 1884년(고종 21)에 서울에 우정총국이 창설되어 현대화된 통신 우편 제도를 실시하게 되면서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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