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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소·부곡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32
한자 鄕所部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진남향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호리
북평향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
사라향 - 전라남도 해남군 삼단면 상가리
동백소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
덕지[진]소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마봉소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산계소 -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 개산리
산심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종옥소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
부곡 회의 부곡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 회의촌
부곡 심정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소죽리
부곡 귀인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계리
부곡 송정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종
부곡 송지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부곡 팔마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팔산리
부곡 신갈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계리
부곡 운수 부곡 -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풍동리
부곡 영가 부곡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부곡 송계 부곡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부곡 냉천 부곡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정의]

고려 시대 영암군 에 예속된 특수 지방 행정구역.

[개설]

군현의 하부 조직으로 존재한 특수 지방 행정 구획인 향(鄕)·소(所)·부곡(部曲)은 종래에 천민 집단 거주지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수공업이나 광업 등 특수한 기능을 담당한 전문 기능 집단의 역할을 하였을 뿐 주민들의 신분적 지위는 일반 군현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향·소·부곡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으나 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 하삼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의 경우 전라도에 있던 향·소·부곡은 모두 256개로 321개의 경상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현재의 전라남도 지역에는 향 25개, 부곡 63개, 소 71개 등 모두 159개의 향·소·부곡이 있었는데, 이 중 영암군에는 향 3개, 부곡 11개, 소 14개 등 총 28개가 분포하였다. 영암군의 향·소·부곡은 전라도 전체 향·소·부곡의 11%, 전라남도 지역 향·소·부곡의 17%에 달하였다. 특히 소가 많았던 것은 특산물 생산에 맞는 자연환경과 수송에 유리한 해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향·소·부곡의 위치]

고려 시대의 영암군은 현재의 해남 화원 일대의 황원군, 강진군 북부의 도강군, 영암 미암 일대의 곤미현, 해남 현산면 일대의 해남현, 해남 마산면 일대의 죽산현 등의 속군현을 거느린 커다란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서남부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영암군과 해남군, 강진군 일대에 해당하며, 영암군의 관할 하에 있었던 향·소·부곡으로 그 위치가 확인되는 것은 현재 19개이다.

이중 현재의 영암군 관내에 속하는 곳은 4개소로 진남향(鎭南鄕)[군서면 동호리], 동백소(冬百所)[덕진면 백계리], 회의 부곡(懷義部曲)[영암읍 남풍리 회의촌]이 있으며 덕지[진]소(德池[津]所)[덕진면으로 추정] 등이다. 한편 해남군 관내 지역으로는 심정 부곡(深井部曲)[송지면 소죽리], 귀인 부곡(貴仁部曲)[옥천면 신계리], 송정 부곡(松井部曲)[송지면 송종], 마봉소(馬峰所)[송지면 마봉리], 북평향(北平鄕)[북평면 동해리], 송지 부곡(松旨部曲)[현산면 월송리], 팔마 부곡(八馬部曲)[옥천면 팔산리], 신갈 부곡(神曷部曲)[옥천면 신계리], 사라향(紗羅鄕)[삼단면 상가리] 등 9개소가 있고, 강진군 관내 지역으로는 운수 부곡(雲水部曲)[군동면 풍동리], 영가 부곡(永可部曲)·송계 부곡(松溪部曲)[성전면 영풍리], 산계소(山計所)[옴천면 개산리], 산심소(山深所)[성전면 월하리], 종옥소(種玉所)[도암면 항촌리] 등 6개가 확인된다. 냉천 부곡(冷泉部曲)은 현재 해남군 옥천면 일대로 고려 시대에 옥천현(玉泉縣)으로 승격되어 영암군에 속했다가 1448년(조선 세종 30)에 해남으로 이속되었다. 이밖에도 좌곡 부곡(佐谷部曲), 웅산소(熊山所), 대상이소(大上伊所) 등의 명칭이 확인되지만 정확한 위치나 성격은 불분명하다.

[향·소·부곡의 운영]

고려 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만 중앙 정부의 직접 지배를 받았고 속현과 향·소·부곡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영암 지역에 설치된 향·소·부곡 역시 영암군에 종속된 영역으로서 중앙 정부의 직접 지배 대신 영암군의 통제를 받았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내부 구조는 영암군에 소속된 일반 군현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이며, 향리와 같은 재지 세력에 의하여 운영되었다고 생각된다.

[향·소·부곡의 폐지]

12세기 이후 향·소·부곡에 대한 과중한 수탈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 정부에서 감무(監務)를 파견하여 직접 관리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부곡에 대한 군현의 개별적 수취가 중앙 정부의 직접 수취로 변화하였다. 또한 고려 후기에 이르면 향·소·부곡 내의 지역 분화 및 군현으로의 승격 등의 구조적 변화가 확대되면서 향·소·부곡이 점차 소멸되어 가다가 1409년(태종 9)에는 완전히 혁파되기에 이른다. 영암 지역의 향·소·부곡 역시 이러한 추세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향·부곡이 해체되는 유형은 군현으로 승격되는 경우[군현화(郡縣化)], 향·부곡이 소멸하면서 주읍이 다른 군현으로 바뀌어 소속되는 경우[내속화(來屬化)], 그대로 본래 주읍의 직촌으로 편입되는 경우[직촌화(直村化)]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영암 지역의 경우 북평향·팔마 부곡·송지 부곡·신갈 부곡은 해남현으로, 송계 부곡·영가 부곡·좌곡 부곡은 강진현으로 내속화하였으며, 진남향·회의 부곡·심정 부곡·귀인 부곡·송정 부곡 등은 직촌화하였다. 사라향과 냉천 부곡은 각각 옥산현(玉山縣)과 옥천현으로 승격되지만 고려 말 조선 초에 모두 폐현되어 해남현으로 내속화하였다. 결국 영암 지역의 향·부곡은 대부분 독립된 군현으로 남지 못하고 해체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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