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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22
한자 百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변남주

[정의]

삼국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한반도 중부와 서남부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

[개설]

백제 건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온조 설화에 따르면 기원전 18년에 부여 또는 고구려 계통의 유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하여 성립되었다. 최초의 백제의 이름은 마한 소국 십제(十濟)였다. 마한으로부터 100리의 땅을 할애받아 십제를 세웠다.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나라 군현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차츰 성장해 나갔다. 3세기 중엽 고이왕 때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 크게 발전하였다. 이때 백제는 마한의 나머지 세력을 모두 정복하여 그 영토가 전라도 남해안에 이르렀는데, 통설에 의하면 이때 영암군을 비롯한 영산강 유역도 복속되었다.

[변천]

5세기 이후 고구려 장수왕의 적극적인 남하 정책에 밀려 결국 개로왕이 전사까지 하게 된다. 결국 백제는 한강 유역의 수도 한성을 빼앗기고 금강변의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었다[475년]. 성왕은 대외 진출이 쉬운 부여 지역의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기고[538년], 국호를 남부여로 개명하면서 중흥을 꾀하였다. 그러나 김춘추의 외교 담판의 결과로 당나라는 660년 6월 소정방 등 구원병을 보내 백제를 공격하였다. 결국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영암 지역이 백제에 복속된 기간은 4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까지 약 300년인 셈이다.

[행정 구역]

백제 시기 지금의 영암 지역에는 4개의 군현 즉, 월내군(月奈郡), 고미현(古彌縣), 아로곡현(阿老谷縣),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 등이 있었다.

월내군은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고, 치소는 현 영암읍에 있었다. 고미현은 영암군의 미암면, 학산면, 삼호읍, 서호면 일대에 있었고, 치소는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 향양 마을 인근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로곡현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 일대에 있었으며, 치소는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반나부리현영암군 시종면을 비롯하여 나주시 반남면, 공산면, 동강면 일대에 있었으며, 치소는 나주의 반남면 소재지로 알려졌다.

[유적]

백제 시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5~6세기에 조성된 대형 고분과 산성 등이 있다. 월내군 관련 유적은 영암읍 망호리 후정 고분군, 송평 고분군, 덕진면영암 금강리 금산 고분군 등이 있다. 고미현 관련 유적은 미암면남산리 마봉 고분, 선황리 당리 고분선황산성 터, 학산면 금계리 고분군과 유물 산포지, 등이 있다. 아로곡현 관련 유적은 금정면의 금대 고분 등이 있다. 반나부리현시종면내동리 고분성틀봉 토성 터, 옥야리, 신연리, 금지리, 태간리 고분군 등이 시종면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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